*이 글은 Ninja Theory의 <헬블레이드: 세누아의 희생>, <세누아의 전설: 헬블레이드 2>와 더불어 Bloober Team의 <더 미디엄>의 주요 내용을 포함함
한 번 거하게 날려먹는 바람에 좀 늦었지만, 헬블레이드 2 이야기를 해봅시다.
1편 경험을 상기해 보면, 말 그대로 인생 과몰입 게임이라고 할 수 있다.
게임 플레이 스타일은 크게 인물에 자신을 투영하는 유형과 인물과 자신을 동일시하지 않고 관찰자의 시점으로 플레이하는 유형으로 나눌 수 있다. 난 후자다.
커스터마이징 캐릭터 포함 플레이어블 캐릭터는 철저한 남이고, 나는 킹메이커나 작가가 된 느낌으로 플레이한다. 캐릭터는 어디까지나 캐릭터다.
그래서 몰입은 하되 캐릭터가 실존 인물인 것처럼 과몰입하지는 않는다. 예외가 헬블레이드(이하 헬블)다.
1편의 핵심 설정은 영구적인 죽음이다. 세누아가 사망할 때마다 어둠이 세누아를 잠식하고, 이 어둠이 누적되어 한계치인 머리까지 도달하면 게임 저장 데이터가 말소된다.
영리한 설정인 게, 실제로 플레이해 보면 웬만해선 영구적으로 죽을 일이 없다. 하지만 이 조건을 시작 부분에서 강렬하게 각인시켜 놓음으로써, 몰입도를 확 끌어올린다. 세누아의 목숨이 내가 투자한 시간과 노력만큼 소중해지기 때문에, 자동적으로 캐릭터와 유저 간 유대 관계가 형성된다. 세누아가 유저 이입형 주인공이 아닌, 유저와 완벽히 분리된 주인공이라 넣은 스토리 몰입용 장치라 할 수 있다.
초반부분만 진행해 봐도 이게 세누아의 머릿속에서 일어나는, 상실을 극복하는 과정이라는 걸 알 수 있다.
여기서 받는 세누아의 고통은 정신적 고통이고, 어둠은 세누아 속에 있는 절망 같은 부정적인 감정이다. 이게 누적되어 머리에까지 도달하면, 정신이 절망에 잠식되면서 세누아의 정신세계가 거기서 끝난다. 즉, 현실의 세누아가 스스로 목숨을 끊는다. 죽음은 되돌릴 수 없다.
만약 내가 도중에 게임을 그만두고 떠나면, 세누아는 광기에 찬 현재 상태에 영원히 머물게 된다.
초반에 이렇게 결론이 떨어지자마자 과몰입 들어갔다. 진심으로 세누아에게 좋은 엔딩을 주고 싶었다.
병이고 어둠이고, 일단 해당 설정을 설명하는 장면이 너무 처절하고 고통스러워 보기 괴로웠다. 이때 연기가 뇌리에 콱 박혀서 첫 플레이 끝내고 곧장 imdb로 달려갔다가, 배우가 아니라는 정보에 충격받았었지 허허
전투에 재미를 느끼는 타입이 아니라서 전투 파트에 성의를 들이지 않는데, 여기선 세상 열심히 했다.
유일무이한 게임 경험을 안겨준 타이틀이라 남다른 애정을 가지고 있다.
이 때문에 이번 속편은 제작 발표 때부터 매 순간 기다렸고, 역시나 실망은 없었다.
이 시리즈는 게임이 체험 매체라는 점을 십분 활용한 대표적인 사례다.
그러면 시스템 측면을 먼저 다뤄보고, 스토리 쪽을 이야기해 보자.
일단 가장 눈에 띄는 변화는 눈이 편해졌다는 것이다. 조명에 따라 삼디 멀미가 나는 타입이라 1편은 한 번에 오래 못한 반면, 2편은 편하게 했다. 조명에 민감한 부류가 특히 어둠이 어중간하면 멀미가 빡 오는데(예: 아캄 시리즈), 동굴에서도 멀미가 없었다.
1편에서 부족했던, 영어권이 아닌 나라에 대한 배려도 보였다.
1편의 경우 퓨리들의 대사는 자막이 일부만 있었고, 소리도 겹쳐 들리곤 했어서, 영어가 익숙하지 않으면 작품을 온전히 경험하지 못했다.
이번엔 퓨리도 명확하게 둘로만 나누고, 소리도 (같은 내용이 아닌 이상)겹치지 않게 구성하였으며, 대사 분량을 줄여 피로도도 낮췄다.
자막을 불편한 상하단 배치에서 전부 하단으로 옮기고, 가장 일반적인 16:9 비율에서 퓨리들 대사만 레터박스에 위치하도록 연출했다. 외부의 소리와 내부의 소리를 시작적으로 분리한 연출인데, 화면 밖에 위치해서 오히려 거슬린다는 의견도 있다.
스토리, 체험에 집중한 게임이라 몰입에 방해가 되는 요소들을 최소화했다.
퍼즐이 시간을 잡아먹을수록 몰입에 방해되므로 난이도를 낮췄다.
전투도 마찬가지로 할애하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스토리 집중도가 떨어지기 때문에, 1 대 다 형식에서 1 대 1 형식으로 바꾸면서 연출 요소로 치환했다.
최대한 쾌적하게 만들어 세누아의 여정에 완전히 집중할 수 있도록 환경을 조성했다. 조작 구간과 스토리 전달 구간 간의 경계를 전부 허물어놔, 몰입도가 굉장히 높다.
이러한 연출을 최초로 시도한 건 아니지만, 가장 발전된 형태로 구현했다. 앞으로 나올 타이틀들이 영향을 많이 받을 것으로 예상된다.
하지만 너무 간소화한 느낌도 있다. 발각될 위험을 통해 긴장감을 조성하는 구간에서, 당연히 있을 줄 알았던 숨기나 정지/숨 참기 기능 같은 것이 없어서 의아했다.
이 게임의 컨셉이 가진 강점은 퓨리의 목소리로 시스템을 유도할 수 있다는 것이다. 특정 구간에서 퓨리가 소리 내지 말라거나 들키지 말라는 소리를 한다. 당연히 대사를 듣자마자 유저는 해당 행동을 하게 되는데, 그에 대한 상호작용이 없다.
처음 이 상황을 접한 지점에서 상호작용이 없다는 걸 알게 되면, 유저 입장에선 어떤 행동을 해도 안전하다는 판단이 나기 때문에, 남은 분량동안 긴장감이 날아간다. 해당 파트가 짧은 것도 아니다 보니, 이 부분이 크게 의식됐다. 있어야 할 게 없는 느낌이다.
분기 컷씬 제작에 대한 부담 때문에 생략한 건가 싶다만, 몰입이 시스템의 목적인 게임에서 이 요소를 챙기지 않은 건 많이 아쉽다.
전작보다 수집 요소를 찾기 쉽다. 두 가지 수집 요소가 붙어있어 하나를 먼저 찾으면 다른 하나도 같이 찾아지게 했고, 대부분 갈래길이 분명하게 보인다. 1회 차에 전부 수집하는 사람도 있겠다.
1회 차에 히든 스토리 조건을 대부분 찾을 수 있게 하고, 내레이션을 다르게 둔 콘텐츠로 2회 차를 유도해서, 메인>사이드>히든 스토리로 자연스럽게 진행되도록 구성했으며, 이를 통해 반복 진행의 지루함을 덜었다.
아무런 정보도 없는 상태로 플레이해야 제대로 즐길 수 있는 유형이다 보니, 반복 진행 시 재미가 급격히 떨어지게 되는 점을 신경 쓴 거 같다. 이 부분이 센스가 좋았다.
작품을 반복해서 경험하지 않는 편이라 보통은 한 번으로 그만인데(어크도 엔딩까진 한 번씩만 함), 다른 내레이션 버전도 할 생각이다. 인물마다 미스터리 한 부분을 조금씩 흘려놔서 호기심을 잘 유발했다. 특히 파르그림르한테 의문이 드는 구석이 좀 있다.
게임 분위기에 맞추려고 일부러 거의 안 보일 정도로 어둡게 설정하고 했는데, 퍼즐 구간할 때 경로가 안 보여서 고생 좀 했다. 처음 나오는 얼굴 바위가 얼굴 모양인 줄 못 알아볼 정도여서, 집중하라는 게 횃불 얘기하는 줄 알았다. 그래서 초반 수집 요소를 다 놓쳤다. 하지만 연출 위주로 본다면 감마를 기본값보다 조금 낮추는 게 확실히 좋다.
여러 메커니즘을 덜어냈다 보니 pc 최적화가 잘 됐다. 그래픽 카드 30시리즈에 옵션 확인도 안 하고 그냥 진행했지만, 그래픽 질이 떨어진다거나(이건 밝게 하면 티 날 듯) 게임이 무겁단 느낌이 전혀 없었다.
전투에서 호불호가 갈릴 거 같다. 먼저 커맨드 형식이래야 하나, 패링 말고도 적절한 타이밍에 특정 조작을 하면 추가적인 액션이 있다는 걸 알아는 챘는데, 그걸 시험해 보기엔 직관적이지도 않고 전투가 메인 비중인 것도 아니다. 회피 반격이 있고, 즉발식이랑 연타형 버튼액션으로 나뉘는 것으로 추측된다. -정확한 발동 조건이나 올바른 조작법 여부를 확실히는 모르겠다.
패링이 1편은 튕기는 느낌이라면, 2편은 막아 흘리거나 밀어내는 느낌이다. 그래서 패링 손맛은 1편이 더 좋다(패드 기준). 세누아가 근력 캐릭터는 아니라서, 컨셉에는 이번작이 더 알맞다. 타이밍은.. 1편이 더 직관적인 느낌이었다만, 내가 너무 어둡게 해서 그런 건지 진짜 그렇게 만든 건지 애매하다.
강공격(붉은빛)도 패링이 된다. 판정이 더 빡빡하고 실패 시 더 크게 휘청이는 식이다.
타격감보다 피격감을 특히나 잘 살렸다. 이 부분도 몰입에 한몫했다.
조작감이 1편보다 현실적이라 묵직하고 반동이 크다. 움직임이 유려하여 전투씬 롱테이크 연출은 감탄이 절로 나온다. 아트 부문 노미는 확실해 보인다.
회피가 약간 휘청거리는 느낌이고, 조작감이 좀 애매하다. 컨셉에는 1편보단 이쪽이 더 맞아서 의도는 알겠다. 전반적으로 액션 요소에 세누아의 신체 조건을 더 제대로 반영했다.
이러한 의도들이 이제 경험에서 와닿냐가 문젠데, 나야 뭐 전투에 관심 없는 사람이라 그냥저냥 컨셉이구나 하고 넘어갔지만, 전투에 목적을 두고서 어떠한 기대를 가지고 이 게임을 하는 거라면 안 맞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했다. 쾌감 본위의 전투 시스템은 아니다.
확실히 영구 사망 옵션이 없다 보니 전투 집중도가 떨어진다. 안이하게 하다 몇 번 죽었다. 그리고 버튼 배치가 편한데 희한하게 많이 헷갈렸다. 이건 왜 그랬는지 모르겠네.
개인적으론 1편을 액션 게임이 아닌 서사 체험형 공포 게임으로 분류하고, 2편도 마찬가지다.
시스템 부분에서 호불호가 갈릴법한 게, 게임의 모든 요소를 스토리 몰입에 맞췄다 보니, 세누아라는 인물에 관심이 없으면 모든 게 별 의미가 없기 때문에 재미가 없다.
그럼 이제 세누아에 대해 말해보자.
1차 해석
*사이드, 히든 스토리를 플레이 하지 않은 상태로, 잘못된 해석의 소지가 다분하므로, 재미로 보길 바람
이 작품은 중심소재로 내면의 어둠에 대해 다룬다. 그리고 이를 다루는 방식이 블루버 팀의 더 미디엄과 정확히 일치한다.
거인 컨셉 뿐 아니라 관련 스크립트도 블루버 팀 스타일이다.
각기 연관 없는 무작위 개별 사건, 단서의 나열같이 보이던 것들이, 사실은 전부 연결된 하나의 이야기였다는 게 밝혀지는 구성으로, 모든 단서의 연결고리이자 근원은 마지막 사연에서 공개된다. 이게 블루버 팀의 시그니쳐 구성이다.
그래서 이 팀의 작품들은 지나쳐온 내용(특히 대사)을 엔딩까지 최대한 기억하고 있어야 이해가 가능하다. 이러한 방식으로 접근하면 보이는 것보다 난해하지 않다.
헬블 2에서 거인과 관련된 부분이 이 구성을 가진다.
개발 기간 중 스크립트가 나올 법한 시점을 고려해 볼 때 카피는 당연히 아니라고 보고, 그냥 비슷한 시기에 제작이 발표되고 개발된 작품들이 이 정도로 유사하게 나온 게 신기하다.
헬블 2가 친절하게 내용을 반복해 주고 비유도 직관적이라, 헬블 2를 먼저 하고 더 미디엄을 하면 딱 좋다.
간략하게 헬블2의 거인=더 미디엄의 괴물이다. 헬블 2에서 반복적으로 나오는 정보가 '신화적 존재로서의 거인은 없다, 그들은 자연 발생한 생물체가 아닌 한때 인간이었던 존재다(=악은 선천적인 것이 아니다).'인데, 더 미디엄에서도 가해자가 자신의 악한 부분을 자신과 분리해 괴물이라 표현하면서 책임을 회피하는 것을 두고, 그것 또한 너 자신이라 선을 그으며 괴물은 없다는 입장을 보인다.
블루버 팀이 최근에 작품이 뜸하다 보니, 오랜만에 이런 구성의 스토리 게임을 하는 거라 즐거웠다.
거인들의 특징을 보면, 덩치 때문에 물리적인 피해를 국소적으로 일으킬 뿐, 사회를 순식간에 파괴할 마법 같은 능력은 보이지 않는다. 그러므로 일퇴이가 회상 파트에서 아스캬가 일으켰다는 일은 거인의 횡포가 아닌 자연재해라 보고, 해당 연출과 은신족의 대사들에다 (일퇴이가의 등장에 산이 무너지면서 용암이 흘러나오는 것으로 보아)이 지역이 활화산 지대라는 정보를 합쳐 당시 상황을 재구성하면, 화산 폭발이라는 결론이 난다. 즉, 아스캬는 산을 신성시하는 명칭이고, 이 산에서 큰 화산 폭발이 일어났다. 다른 거인들 파트도 같은 묘사로 이야기를 시작한다. 파르그림르도 화산에 대해 언급한다.
그로 인해 삶이 각박해지면서 서로 배척하고 약자들이 착취당하는 구도가 형성됐다.
일퇴이가 회상 파트에서 좀 신경 쓰이는 부분이 있다. 이야기 시작부터 연인이나 배우자에 대한 설명도 없고 아이가 있다는 설명도 없이 잉귄이 단신으로 다녔다고 했거든. 그런데 약자가 강자에게 모든 걸 강탈당했다는 설명 다음 갑자기 아기가 등장한다. 스크립트의 깊이감을 따져보면 의도한 건 아닌 거 같지만, 이 단서의 공백이 꺼림직하다.
아무튼, 갈수록 최악으로 치닫는 환경에 잉귄은 자신의 아이를 이런 세상에서 살게 할 수 없다며, 미지의 종족이 있다 전해지는 동굴에 두고 간다. 그리고 스스로 인간성을 버리고 복수의 화신이 된다.
잉귄을 거인으로 잠식시킨 감정은 분노다.
자신이 어둠을 쌓을 수밖에 없는 상황으로 내몬, 세상에 대한 거대한 분노가 잉귄의 지옥에서 그를 구속하고 있었고, 마찬가지로 환경 때문에 원치 않게 어둠을 쌓아 온 세누아가 자신을 이해할 거라 여긴다.
세누아는 잉귄과 같았지만, 스스로를 갉아먹는 대신 어둠을 짊어지고 앞으로 나아가기로 결심했다. 그래서 잉귄을 이해하고서, 그를 좀먹고 있던 분노로부터 해방시켜 준다. 순수한 피해자였기 때문인지, 잉귄은 어둠이 누적된 인물들 중 유일하게 그의 탓이 아니라는 뉘앙스의 대사가 있다.
사실 이 모든 것은 고디로부터 시작되었다.
고디 회상 파트 시작 부분에 유추한 바와 같이 화산 폭발이 일어나서 사회가 혼란에 빠졌다 나온다.
그 상황에서 사람들을 한대 모아 보호한 것이 고디다. 처음엔 좋은 의도로 지도자가 되었다.
하지만 부족이 안정될수록 자신의 영향력이 약해짐을 느끼고, 권력을 유지하기 위해 공포를 악용하기 시작한다.
마지막 설산 거인인 폭군이 등장하지 않는 이유는, 고디가 만든 허구의 존재이기 때문이다. 설산 거인은 눈보라에 (고디의)얼굴이 떠오르는 것으로만 나온다. 고디는 자신과 폭군이 연결되어 있다며 서로를 이해할 수 있다 말한다. 사실은 둘 다 고디였다. 거인으로 변이 하거나 해방 후 돌이 되지 않은 것은, 철저히 전략적인 행위라 완전히 감정에 잠식되지는 않았기 때문으로 추측된다. -정황상 추측이고 확실하진 않음
고디는 자신을 구원자 역의 고디와 공포의 대상인 거인, 폭군으로 분리했다. 그렇게 공포를 통해 자신을 중심으로 비아르그들이 다시 뭉치게 만들었다.
그리고 공포를 빌미로 무엇이든 해도 괜찮다는 사회 분위기를 형성했다. 거인 때문에 어쩔 수 없다, 살기 위해 어쩔 수 없다며.
이를 통해 다른 이들을 어둠으로 몰고 가 공공의 적인 거인들이 계속 생겨날 환경을 조성했다.
일퇴이가 파트에서 강자들이 약자들을 착취했다는 것과 같이, 고디 파트에서도 고디가 강자들이 약자들을 응징하도록 유도했다는 내용이 나온다.
세에게이르에게 배신을 제시한 집단이 비아르그다.
그래서 잉귄과 세에게이르는 회상 파트에서 흰 오라에서 붉은 오라 변하는 반면, 고디는 처음부터 붉은 오라로 표현된다.
처음 일퇴이가와 조우할 때, 일퇴이가는 세누아에게 우리는 모두 괴물이라 한다.
더해 일퇴이가가 세누아에게 자신을 이해할 것이라 말한 것은, 세누아의 어둠을 알아봤기 때문이다. 자신과 같이 거인의 길로 들어선 사람이라는 것을 말이다.
1편에서 어둠이 머리까지 잠식되면 죽는다고 생각했는데, 일퇴이가같은 거인 상태가 되는 거였다. 인간성을 상실하고 영원히 어둠에 잠식되는 삶.
거인들은 태양 아래에서 존재할 수 없다. 빛과 어둠은 선과 악에 흔히 비유되고, 이 작품에서도 그러한 비유를 계속해서 사용한다. 고로, 이 설정은 악(업보)의 누적치가 임계치를 넘게 되면 다시는 선으로 돌아오는 것이 불가능하다고 해석된다. 그리고 거인으로 변이 된 후 얻을 수 있는 해방의 형태는 오로지 죽음뿐이다.
이는 업보가 지나치게 쌓이면, 더 이상 회개할 기회 없이 죽음으로 답할 일 밖에 남지 않는다는 것과 같다.
토르게스트르의 경우, 첫 교전에서 목까지 어둠이 쌓여 있는 게 확인된다. 벼랑 끝에서 마지막 기회를 얻은 것이나 다름없다. 그리고 세누아와 마찬가지로 자신의 어둠에 대해 정확히 인지하고 있다.
토르게스트르가 아버지의 영향력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상황에 고통받고 있다는 내용이 반복해서 나온다. 숲에서 다시 만났을 때도, 자신은 하기 싫었는데 아버지가 억지로 시켰다는 말을 하며 울었던 기색을 보인다. 세누아가 그랬듯이 말이다.
세누아와 토르게스트르는 서로가 자신의 동류임을 알아보았다.
세누아는 성장 환경과 부족의 멸망, 딜리언의 죽음으로 인해 광기에 빠졌었고, 극단적인 행동들을 일삼아 왔다.
거인의 이러한 설정은 세누아가 사연이 있으나 무고한 인물은 아니라 못 박아주고, 이 이야기가 세누아 스스로 그 점을 인지하고 회개하는 여정임을 알려준다.
마지막에 나온 극단적인 면모가 세누아 속 거인의 형상이라 볼 수 있다.
내적으로든 외적으로든 자신의 상황이 일단 시급하니까 극단적이고 충동적인 방법을 쓰면서 생존이나 보호를 위해서라는 이유를 들어왔지만, 사실은 그게 변명이 되지 않는다는 걸 알고 그러고 싶지도 않았다. 어쩔 수 없는 건 없었다. 언제나 다른 선택은 있었다.
잉귄과 세에게이르, 토르게스트르는 모두 세누아와 같은 부류다. 우리가 이들의 사연을 보아도 그들의 행동에 면죄부를 주지 않듯이, 세누아도 면죄부를 받을 자격이 없다는 것이지. 세누아는 앞으로라도 그걸 만회하고자 하는 거고. 잘 만든 주인공이다.
오프닝에서 토르게스트르를 돌로 찧으려 했던 장면과 엔딩에서 올리프를 돌로 찧으려 하는 장면의 수미 상관이 소름이었다.
세누아의 성장이 거창한 사건 하나를 경험하고 급변하는 게 아니라, 2편의 시작부터 끝까지 사소하고 평범한 것들로 차곡차곡 쌓여서 이루어진 게 마음에 들었다.
확실히 극단적이었던 1편에 비해 세누아가 안정적인 상태가 되었단 느낌도 주고, 상실의 수용 이후 평범함을 위한 새로운 시작으로 잘 어울렸다.
자신의 내면에 함몰되어 있던 시각이 내면에서 벗어나 세상으로 뻗어 나가며, 세누아가 자신의 세계를 조금씩 넓혀가는 여정을 함께하는 건 기분 좋은 경험이었다.
오프닝부터 눈에 띄는 변화는 퓨리들에 대한 세누아의 반응이다.
속삭임은 세누아의 부정적인 감정인 어둠의 목소리로, 명칭도 퓨리 furies다. 세누아의 생존에 위기가 오면 세누아를 돕곤 하지만, 평상시엔 비관적이고 극단적인 성향을 보인다.
이들은 세누아 속에서 떠오르는 날것의 생각들이다. 고디가 세누아를 보고 전리품이라 칭하자, 바로 격렬하게 불쾌감을 표하는 것과 같이 말이다.
전투 시엔 집중하니까 기본적으로 상념이 조용하고, 중간중간 피해야 한다거나 더 강한 공격을 해야 한다거나 누가 더 빠르다거나 하는 전술적인 판단을 위주로 한다.
해당 증상이 없는 사람들이 복잡한 감정을 느꼈을 때 일어나는 생각의 흐름처럼, 일관적이지 않고 입장이 중구난방 이랬다 저랬다 한다.
전투 후에 아우스트리드르에게 내 도움이 아직도 필요하냐고 묻고는, 대답을 기다리는 잠깐동안 거절에 대비한 방어기제로 비관적인 말을 쏟는다. 그러다 아우스트리드르가 손을 내밀자 바로 입장을 뒤집어 그 손을 잡고자 한다.
세누아는 이러한 자연스러운 감정 반응들이 자신의 세계관의 일부로 구현된 상태라고 한다. 다른 이들에겐 스쳐 지나가는 생각일 뿐인 게 세누아에겐 현실이다.
오프닝부터 세누아는 퓨리의 대사와 의견이 일치하지 않는 대사들을 한다.
퓨리들의 목소리가 날것의 생각이라고 했으니, 자신의 안에 본능처럼 떠오르는 비관적인 생각들을 의식적으로 따르지 않으려고 시도한 것이다.
구하지 못했기 때문에 죽인 거나 다름없다는 자기 비하가 일차적으로 머리에 떠올라도, 의식적으로 생존자가 있다는 걸 확인했으니 이들을 구하러 가야 된다고 말한다.
이러한 세누아의 노력이 직접적으로 보이는 장면이, 파르그림르를 만나고 토르게스트르를 풀어줄 때다.
파르그림르가 세누아에게 자신이 기다리던 한 줄기 빛이라는 말을 건네자, 세누아의 그림자가 복수를 하라고 종용한다. 파르그림르는 노스맨이라, 세누아의 마을을 습격한 자들과 동류이기 때문이다. 이에 세누아는 자신이 가장 어두웠던 시간에 자신을 구해준 사람은 이방인이었다 말하며, 파르그림르를 구하기로 결심한다.
게임 내적으로는 딜리언을 말하는 것이지만, 1편에서 세누아의 여정을 이끄는 것이 유저라는 것을 연출에서 계속 의식했던 걸 생각해 보면, 게임 외적으로는 유저라고 볼 수 있다.
이전에 딜리언/유저가 세누아에게 뻗은 손이 세누아를 구원했고, 이제 세누아가 다른 이들에게 똑같이 손을 내민다. 엔딩에도 관련 대사가 나온다.
토르게스트르를 풀어줄 때도, 세누아가 그에게서 한 줄기 빛을 봤다는 대사가 나온다. 이때 퓨리들은 토르게스트르를 죽게 두라고 한다. 그리고 세누아가 그 선택을 하지 않자, 자신들의 말을 듣지 않는다며 화를 낸다.
선의 믿음이란 생각 없이 무턱대고 믿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선택이 실패할 수도 있다는 걸 알고 있음에도 상대에게 신뢰를 다시 쌓을 기회를 주는 것이라는 점을 잘 표현했다.
그리고 한 줄기 빛을 봤다는 표현은 직전 챕터에서 파르그림르가 세누아에게 한 말이고, 이는 세누아가 딜리언 이후 처음으로 받은 믿음이다. 그걸 바로 그대로 돌려준 거라고 볼 수 있지.
이런 세누아의 성정을 확인할 때마다 세누아 아비에 대한 분노는 커져만 가고..
동료들은 이러한 변화의 시도에 항상 즉각적인 피드백을 보인다.
토르게스트르는 도움 요청에 세누아가 진짜 자신을 풀어주자, 일퇴이가에게 쫓길 때 구해주는 것으로 바로 답한다. 그 후로도 세누아의 어둠을 이해하고 공감해 준다. 파르그림르는 딜리언이 해주었던 말, 세누아가 듣고 싶었던 긍정적인 말들을 해주면서 세누아에게 이해와 믿음을 주고, 아우스트리드르도 든든한 신뢰를 주고 세누아의 도움을 계속 필요로 해준다.
세누아를 따라 들어선 숲에서 길을 잃었을 때에도 누구도 세누아를 탓하지 않는다.
세누아가 처음 만난 동료들이 좋은 사람들이라 좋았다. 토르게스트르는 좋은 사람이라기엔 좀.. 좀 뭐시기지만..
세누아가 1편에선 계속 딜리언을 찾고, 유저에게 도움을 청하고, 계속해서 누군가에게 의존하고 그랬는데, 이번엔 딜리언도 유저도 찾지 않는다. 실패하더라도 혼자서 해내려고 노력한다.
2편에서 세누아의 성장 서사 터닝 포인트는 은신족을 찾으러 간 동굴이다. 세누아는 은신족을 찾는데 필요한 하나뿐인 열쇠인 횃불을 낯선 이에게 전달하고 자신이 베푼 그대로 보답받는 경험을 한다. 다음으로 누군지 모르는 이의 도움 요청에 자신의 전부인 검을 내어준 후, 이제까지와는 달리 폭력을 사용하지 않고 문제를 해결하는 경험을 한다. 문제를 해결하는 방법이란 빛을 따르는 것이다.
그리고 그에 대한 보상으로 새로운 검, 새로운 자신을 얻는다.
새로운 세누아는 거인을 이해하고, 그들의 정체를 알 수 있다. 그래서 일퇴이가 다음 거인들 파트에서는 이러한 번거로운 과정을 생략한다.
은신족을 찾기 직전 마지막 시험에서, 분노를 사용하길 유도하는 그림자를 극복하고 빛으로 손을 뻗는다. 은식족이 이때 변화를 위해 어떤 대가를 치를 것인가 묻는다. 이 변화는 개인 단위뿐 아니라 세상이라는 넓은 단위도 뜻한다. 세상의 변화에는 누군가의 희생을 대가로 지불해야 한다. 전투 이후에 이와 관련된 대사들이 한 번씩 나온다.
다른 내레이션 버전이 보고 싶다고 생각한 건, 숲을 통과하는 챕터 때문이다. 이때 동료들의 반응이 흥미롭다.
뿔뿔이 흩어진 후 처음으로 만난 아우스트리드르는, 어둠 속에서 누군가의 존재를 느꼈지만 직접 보지는 못하고 대치하지도 않았다. 겁을 먹긴 해도 말과 행동이 이전과 같이 선명하다.
이 친구는 젊고, 지도자가 된 지도 얼마 되지 않았다. 거인의 횡포 아래 오래 시달리지도 않았으며, 기본적으로 강인한 성정을 가진다. 어둠이 크게 누적되지 않았다.
두 번째로 만난 파르그림르는, 만났을 때 환청 효과가 나오면서, 누군가의 존재를 느끼는 정도가 아니라 자신의 머리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다 말한다. 어둠을 직접 언급하며, 이전과 달이 말과 행동이 흐릿하다. 퓨리도 그가 변했고, 그 자신의 어둠을 본다 알려준다.
아우스트리드르는 알아서 길을 찾아올 수 있는데 반해, 파르그림르는 길을 보지 못하겠다 한다. 그래서 세누아가 소리를 따라오라고 지시한다.
이 둘을 만나고 난 다음, 어느 쪽을 먼저 구할지 선택지가 나온다. 나는 파르그림르가 전사도 아니고 정신적으로도 더 위태로워서, 파르그림르 쪽으로 갔다. 그런데 다른 선택지를 보니, 갈래길에서 다시 만났을 때, 아우스트리드르는 별다른 말 안 하는데 반해, 파르그림르는 꽤나 헌신적인 대사를 하더라. 세누아가 무사히 탈출하길 바랐다고, 세누아를 놓쳤다고 생각했지만 세누아만 목적지까지 도달하면 상관없다고.
퓨리는 파르그림르가 세누아를 위해 희생할 수 있는 사람이라고 말한다.
처음 만났을 때 세누아에게 하는 말도 그렇고, 오래 지속되고 있는 절망적인 상황에 세누아를 구원자로 섬기는 느낌이 있다.
파르그림르가 은신족에게 무언가를 하나 얻었다 한 게 구원자인 세누아일까? 그래서 첫 만남에서 누군가(세누아)가 올 줄 알았다고 한 걸 지도 모르겠다. 세누아에게 선지자라는 식의 표현도 했고.
파르그림르는 전사가 아니다. 그럼 그의 어둠은 어디서 왔을까.
파르그림르의 어둠은 죄책감과 희망에 대한 불신이다.
파르그림르네 마을로 가는 길목을 보면, 꽤 큰 규모의 마을이 전부 무너져 내린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원래는 그 정도로 인구가 많고 번성한 마을이었다. 하지만 현재는 움막 대여섯 채밖에 남지 않았다. 그마저도 매일밤 일퇴이가에 의해 인원수가 줄어든다.
파르그림르는 평화와 명예를 추구하는 온건파 리더다. 그의 방식이 옳은 것은 맞으나 유효하진 않았다. 마을을 전혀 지켜내지 못하고 있다. 명예를 지키기 위해 선이 넘는 행위를 하지 않지만, 마을을 지키기 위한 능동적인 행동 또한 하지 않는다. 사실상 관망이다.
파르그림르와 토르게스트르의 대화를 들어보면, 둘이 원래는 한 식구였다. 화산 폭발 이후 고디와 뜻이 달라 갈라선 것으로 보인다.
결과만 놓고 봤을 때 자신이 비판하는 비아르그보다 확실히 좋지 않은 상태다 보니, 그 부분에서 리더로서 잘못된 선택을 한 것은 아닌지, 스스로 의심하고 죄책감을 가지고 있었던 게 아닐까 싶다. 너무 오래되어 희망에 대한 믿음마저 꺼지고 있는 중이고.
토르게스트르야 명확하지. 목까지 어둠이 찬 상태다 보니 실체를 봤다. 자신이 과거에 해야만 했던 것들을 생생하게 목격하고 재경험했다. 이때 퓨리는 토르게스트르가 변했다고 하는데, 안개도 없고 인물의 상태도 굉장히 선명하다. 이후의 행보를 고려하면, 아우스트리드르나 파르그림르와는 반대로 어둠에서 빛으로 변한 것으로 보인다.
토르게스트르는 등장부터 계속해서 어쩔 수 없었다는 표현을 한다. 세누아가 다른 사람들을 구하고 보호하기 위해서라는 이유를 대듯, 내 사람들을 위해 어쩔 수 없었다고 말한다.
토르게스트르는 무리의 안전을 위해 수단을 가리지 않는 강경파 리더(의 대행)다.
파르그림르와 토르게스트르, 이 둘은 각기 다른 방식의 순응이다. 아우스트리드르 또한 자발적으로 비아르그에게 문을 열어주었다 했다. 이 셋은 순응이다.
그리고 세누아는 저항이다. 2편에서 세누아는 저항한다. 내면의 부정적인 감정, 자신을 무너뜨리려는 과거의 망령, 아버지의 핏줄로부터 물려받은 운명, 현실에서 자신을 위협하는 적들에 끊임없이 저항한다. 거인의 속성을 생각해 봤을 때 그들의 존재가 (마지막 거인의 이름처럼)폭군이나 외부의 강압이라 놓고 보면, 거인을 제압한 것은 압제에 대항한 것과 같다.
파르그림르는 세누아를 두고, 다른 시각으로 세상을 볼 수 있는 사람이라고 한다. 그리고 아우스트리드르를 만나기 전에 세누아가 평화를 보는 구간이 있다.
평화로운 세상에 대한 가능성을 볼 수 있는 사람, 세누아는 세상을 변화시킬 사람이다.
1편이 수용이었던 것과 반대로 2편은 저항이라는 것도 재밌는 구도다.
그 외 인상적이었던 부분들을 소소하게 이야기하자면,
- 드라우가 파트는, 유저들로 하여금 일퇴이가가 신화적인 존재인 것처럼 인식하게 만든다. 파르그림르의 말에 의하면, 드루이가들은 일퇴이가를 숭배한다. 드라우가의 식인 습성도 숭배 행위의 일환일지도 모르겠다. 혹은 자신들의 야만적인 행위를 합리화하기 위해 종교를 명분으로 이용한 것이나.
- 재밌는 디테일 하나 발견한 거, 토르게스트르가 처음 세누아 만났을 때는 girl이라 부르더니, 세누아 칼맛 좀 보고 동료된 후엔 woman이라 지칭한다.
- 아우스트리드르를 바라보는 세누아의 시선에 동경이 담긴 것도 좋은 디테일이었다. 둘이 케미 좋았다.
아우스트리드르가 세누아가 처음 제대로 사귄 또래 친구에다 성격도 시원시원한 게 마음에 들어서, 또 볼 수 있었으면 한다.
2차 해석
*사이드, 히든 스토리 플레이 후 추가
속편이 나온다면 은신족에 대해 풀어줬으면 좋겠다.
한때 신이었던 존재라는 정보나 세누아가 이들에게 선택받았다는 요소같이 실존하는 것처럼 묘사되는 부분이 있는 한편, 실존한다는 전설을 듣고 세누아가 모든 것을 해결하고 싶다는 간절함, 극단적인 것이 아닌 다른 방법이 있다는 희망, 자신감과 추진력을 불어넣어 줄 영웅 심리들을 빚어 만들어낸 새로운 내면의 존재 같기도 해서 좀 더 알고 싶다.
거인 회상 파트들이 세누아가 이제까지 어떤 흐름으로 이 거인이 생겨난 건지, 거인들의 사연을 머릿속에서 재구성해서 추론하는 과정을 시각화한 거라 느꼈다.
그림자가 세누아 내면의 빌런 목소리라면, 은신족은 히어로 목소리 뭐 그런 거 말이다.
타인의 묘사에서도, 파르그림르가 그들에게 뭔가를 얻어냈다 하긴 했지만 직접 조우했다는 뉘앙스는 아니었고, 잉귄의 경우도 아기가 맡긴 그대로 죽어있던 걸 보면 사람들의 마음속에서 만들어낸 희망적인 존재일지도 모르지.
-라고 생각했는데, 세누아의 시선으로 세상을 본다는 것에 의의가 있는 시리즈고, 세누아에겐 이 모든 게 현실이기 때문에, 무엇이 실제인지 따지는 건 의미 없겠다. 똑같이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게 맞는 듯
솔직히 1편도 그렇고 속삭임은 거슬리거나 힘들지 않았다. 일상에서 충분히 경험할 수 있는 산발적인 사고들이라 느껴서, 받아들이는데 어려움이 없었다. 그보단 본인의 증세를 인지하고 있다 보니, 현실이 무엇인지에 대한 혼란이 끊임없이 오는 게 고통스럽겠다는 생각을 했다. 불확실함은 사람을 불안정하게 만든다.
스크립트가 마음에 들어서 엔딩보고 또 imdb로 달려갔는데, 작가분 이 작품이 두 번째 스크립트 작업이시더라. 이 제작사 뭐지 진짜..
아 물론 1편 디렉터이자 작가가 같이 작업하긴 했다. 그래서 1편과의 연관성이 그렇게 좋았구나 싶다.
아쉬웠던 점을 굳이 하나 꼽자면, 스토리 중심이라 혹시라도 전달이 안 됐을 경우를 고려한 게 너-무 친절하다. 이미 나온 내용을 다른 방식으로 계속 반복해서 보여주다 보니까 엔딩이 좀 산만하다. 그래서 엔딩 부분이 상대적으로 완성도가 떨어지는 느낌이 든다.
이 제작사의 차기작이 공포 게임(Project: MARA)이다. 정확히는 체험형 공포 게임이고, 이에 대한 프로토 타입이 이번 헬블 2라 볼 수 있다. 자신들의 정체성을 체험이라 확실히 정한 모양이다.
티저 중 무엇이 현실인 지 더 이상 알 수 없다는 문구나 중간중간 보이는 정신의학과 관련된 단서들을 보면, 헬블 시리즈의 노하우를 살려 조현병을 고증한 심리적인 공포를 다룰 것이라 예상된다.
헬블 2의 피드백이 제대로 반영된다면, 블루버 팀과 함께 영상 연출형 공포게임계의 투탑으로 자리 잡을 수 있겠다. 블루버 팀이 예술성, 서사에 중점을 둔다면 닌자 시어리는 현실성, 체험에 중점을 둬 차별점도 확실하다. 블루버 팀 공포 게임들이 장르 최애인 입장에서 매우 반가운 소식이다. 닌자 시어리의 앞으로의 행보가 기대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