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 글은 <어쌔신 크리드: 발할라>를 중심으로 한 어쌔신 크리드 시리즈 전반에 걸친 주요 내용들과 파크라이 6 엔딩 스포일러를 포함함, 미라지는 반영되지 않음
* 시리즈를 직접 플레이할 예정이라면 엔딩을 본 다음 읽는걸 권장함(신디케이트, 오디세이 제외 어느 타이틀이든 상관 X)
* 글 쓴 사람은 신이 있어도 그만, 없어도 그만인 무교임
* 23.12.19 - 부적절한 표현 수정, 삭제
* 23.12.21 - 데이터베이스 경로 잘못 기재된 부분 수정, 해석 오류 수정
사정상 미라지는 내년 초에나 할 수 있을 것 같아서, 작가가 세이지 설정을 설명해 줬을 때 적어둔 덕질 노트나 정리하면서 어크 밈화 탈피제를 좀 해볼까 한다.
미라지가 발할라에 이어 세이지(환생이수, 현자)에 대한 이야기를 조금 더 연장할 거 같으니, 우선 이에 대해 정리하면서 어크의 기본 개념에 대해서도 얘기하겠다. 이전 글에서 불분명하게 적은 것도 좀 고치고..
거창하게 말하지만 그냥 의식의 흐름글이다. 근본 많이들 좋아하는 거 같으니 1편 위주로 예시를 들겠다.
설정을 풀어준 작가는 다비 맥데빗(공식 트위터에 기재, 현재는 계정 비활성화됨)으로 블랙 플래그에서 세이지 설정을 처음 만든 작가이자 발할라 내러티브 디렉터+작가다.
얘기하는 거 보면 마지막 챕터 스크립트도 디렉팅 한 것 같다.
! 글을 묵히는 동안 트위터 계정이 사라져서 인용을 못했지만, 읽어보면 대충 무슨 내용인 지 이해 가능할 거라 여겨 내용을 그대로 유지함
쉽게 말해 세이지의 원리는 아래와 같이 설명할 수 있다.
A의 삶을 살던 사람이 기억을 잃고, 전혀 다른 가치관과 삶의 방식을 가진 B의 삶을 살아가게 된다.
그러던 어느 날 A의 기억이 조금씩 돌아오기 시작하면서 B는 자신이 과거에 어떤 삶을 살았는지 알게 된다.
인간성은 지금보다 더 좋았을 수도, 더 나빴을 수도 있다.
이때, B는 A의 삶을 자신의 본연의 모습이라 여겨서 다시 자신을 A라 정의하고 이전과 같은 삶을 살아갈 것인가?
아니면 A는 과거일 뿐이고 현재를 살아가는 B의 삶이 자기 자신이니 A의 삶으로 돌아갈 것을 거부할 것인가?
이를 이수에 대입해 보면
이수의 삶이 그대로 각인된 기억 매체(DNA)를 가지고 태어난 환생체가 인간으로서 자신의 삶을 살아간다.
어느 날부터 DNA에 각인된 기억이 깨어나게 되고, 자신이 과거에 '신'이라 여겨지는 이수의 삶을 살았음을 알게 된다.
인간성은 지금보다 더 좋았을 수도, 더 나빴을 수도 있다.
이때 환생체는 과거 이수 시절의 기억이 자신의 진짜 정체성이라 생각하고 이수의 삶을 반복해서 살 것인가?
아니면 현재 자신은 더 이상 이수가 아니고 인간이기에 이수의 삶을 잇는 것을 거부할 것인가?
이를 다시 에이보르 사례에 적용하면
오딘의 삶이 그대로 각인된 기억 매체를 가지고 태어난 에이보르가 바이킹의 삶을 살아간다.
에이보르가 지도자의 길을 걷게 된 시작점인 쿄트베 암살부터 오딘의 기억이 본격적으로 깨어나기 시작한다.
이때부터 에이보르는 권력을 얻게 되고 같은 지도자였던 오딘의 삶과 싱크가 높아진다.
오딘의 기억이 선명해질수록 이수 시절과 같은 삶을 추구하고 싶다는 유혹이 치고 올라와 에이보르를 계속 구슬린다.
하지만 에이보르는 영국에 온 후 여러 가지 경험을 하고, 권력과 영광 같은 오딘이 최고로 추구하는 가치들보다 더 중요한 것들이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기에, 이전 오딘의 삶을 이어가기를 거부하고 더 나은 가치를 추구하는 에이보르의 삶을 이어가기로 결정한다.
이렇게 이수 환생체의 내면에서 갈등하는 과정을 표현한 것이 발할라의 메모리 코리도어(작가는 death room이라 지칭)라 할 수 있다.
어크의 메모리 코리도어는 실제 타겟과의 대화라기 보단 암살 이후 암살자 내면에서 일어나는 동정, 죄책감, 의심, 의지, 다짐 등의 복합적인 감정을 극적인 방식으로 표현하는 것을 기본으로 한다.
모든 사례가 그런건 아니라 유니티같이 사실을 확인하는 경우도 있다.
1편의 경우 또한, 코리도어의 대화 중 일부 대사는 타겟이 직접 말한 것으로 나온다. 이에 대해 알타이어가 알 무알림에게 질문하는 장면도 있다.
이 때문에 confession room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아직도 공식적인 명칭이 없어서 확실하게 정해줬으면 좋겠다.
타겟과 정보만 주고받는다고 하더라도 주인공 내면에서 진행된 추리 과정일 수 있는 등 패턴이 다양해서 결국 상황과 맥락을 보고 판단해야 한다.
포인트는 실제로 암살하고 나서 그렇게 길고 여유롭게 대화한 건 아니라는 것이다.
어크는 코믹스와 같은 방식으로 제작된다. 그래서 제작 스튜디오, 작가, 디렉터, 미디어 포맷에 따라 설정이 미묘하게 차이 난다.-게임이 우선적인 기준이긴 함
예로, 데스몬드가 루시를 찌른 설정도 레벨레이션(이하 레벨)과 3에서 각기 다르게 설명한다. 이번 발할라에선 다시 레벨 설정으로 복구됐다.
맥데빗은 확실히 자신의 설정을 밝혔으니 이 작가가 디렉팅 한 작품은 해당 설정으로 해석하면 된다.
다시 돌아와서, 딱 여기까지는 개인적으로 해온 해석과 같다.
여기서 갈리는 게 'A와 B, 이수의 정체성과 현재 인간의 정체성을 같게 보는가, 구분 지어 보는가'다.
작가는 환생체를 '정확한' 이수 본인이라 설정했다.
오딘은 개별 정체성이 아니라 그냥 과거에 불리던 이름이고, 오딘의 현대 인류 타임라인에서의 인간 정체성이 에이보르일 뿐이다, 즉 A=B다.
그래서 한 사람이 오만하고 권력을 추구하던 과거를 뒤로 하고 더 나은 자신이 되기로 결심한 장면을 극적으로 표현하기 위해 오딘과 에이보르를 따로 표현한 것일 뿐, 둘의 정체성은 같다는 것이 요지다.
발할라 엔딩도 에이보르/오딘이 더 나은 사람으로 성장한 과정을 그렸으며, 그 과정에서 억누르고 외면했던 과거들을 자신의 일부로 인정했음을 마지막 챕터에서 그려냈다.
나는 여기서 A와 B는 별개의 자아로 분리해서 봐야 한다고 해석해왔다.
많이들 혼란스러워하는 설정이라 정리를 하고 가자면,
어크 세계관의 현실 역사에 기록된 인간 에이보르는 여성이 맞다. 그리고 오딘은 흔히 알려졌듯 남성이지.
에이보르가 여성인건 제작진이 그렇게 말했기 때문에 X
게임에 나온다. 과거 파트에 문서(숨겨놓지 않았음)로 나오고 현대 파트에서 단서로도 보여준다.
현대 파트를 관찰하고 스토리를 따라가다 보면 자연스럽게 도출할 수 있게 해 놨다.
그리고 애니머스 속 남성형 또한 에이보르가 맞다.
애니머스 내에서 성별을 자유롭게 바꿀 수 있는 이유는, 에이보르가 오딘 또한 자신의 정체성이라 인정하고 받아들였기 때문이다. -마지막 챕터 참고
내면에서 '오딘이었던 나'라고 스스로를 오딘이라 인지하는 것이 투영되어 애니머스에서만 남성형으로 구현되는 거고, 실제 물리적으로는 여성의 신체를 가진다.
따라서 에이보르의 대표 이미지로 남성형을 내세워도 설정에 어긋나지 않는다.
이 설정은 한 사람의 성격이나 가치관 등을 결정하는 데 있어, 성별은 아무런 상관이 없다는 걸 주장한다.
주요 인자는 주변 환경과 성장 배경, 목도한 상황, 경험 등이지 성별에 따른 고유한, 선천적인 성질은 없다는 말이다.
시리즈 중 주인공의 성별 설정이 유의미한 타이틀들이 분명 있고 핵심 요소로까지 작용하는 경우도 있지만, 발할라는 여기에 해당되지 않는다.
대신 물리적인 신체 조건은 고정이라 이런 건 있다.
어크의 설정이 기억을 체험하는 것이기 때문에 에이보르 시기 기억 속의 인물들은 모두 에이보르를 여성이라 생각하고 반응한다.
란드비는 여성에게 고백했다. 이건 남성형으로 플레이해도 고정이다.
반대로 여성형으로 아스가르드에 가도 오딘의 기억을 보는 거라서 에이보르가 자신을 남성으로 지칭(토르의 아버지 등)한다.
마찬가지로 기억 속 인물들은 에이보르를 남성으로 여기고 반응한다.
어크 생각보다 설정 꼼꼼하게 따진다, 퀘벡 빼고.
퀘벡은 그냥.. 어크에 관심이 없어.
아무튼 맥데빗은 한 사람이 기억상실을 앓다 기억을 되찾은 것과 같이 설정했고, 나는 이중인격으로 해석했다는 말
내가 생각한 가설은 아래와 같다.
DNA에 각인된 과거 인물의 기억이 조상의 기억에 그치지 않고 실질적인 경험으로 인정되려면 해당 기억이 독립적으로 작용해야 한다.
7만 7천년 전에 생성되어 DNA에 기록된 코드인 이수 기억과 달리 환생체의 기억은 해당 세대에 새롭게 생성된 코드다. 이제까지의 사례를 보면 항상 신규 생성 코드가 데이터를 누적한 이후 이수 기억 코드가 개입한다.
발할라 오프닝에서 에이보르가 죽음에 가까워졌을 때 순간적으로 오딘의 의식이 개방되면서 애니머스가 DNA의 데이터 스트림에 혼선을 일으키는 것도 오딘과 에이보르의 자아가 각각 독립된 코드로 존재하고 DNA에도 따로 기록되었기 때문이다. 동일 개체라면 혼선을 일으킬 수 없다. 따라서 이수와 환생체는 개별 존재다.
바심의 경우 마지막 챕터에서 로키와 바심이 의견차로 싸우다가 서로를 이해하게 되었다는 대사가 나온다. 여기서 '나와 로키'라고 표현한 걸로 봐서 쌍방 합의 후 의사 결정권은 바심 쪽이 가지게 되었다. 바심과 로키가 같은 목적의식을 가지나 바심의 자아가 주도권을 잡고 있다.
에이보르의 경우는 오딘이 신과 바이킹의 방식을 맹신하는 에이보르의 성향을 이용해 주도권을 잡으려 시도했다. 하지만 에이보르가 현실을 직시하는 성향도 강하다보니 시간이 지날수록 오딘의 설득력이 약해졌다. 마지막 수로 발할라에서 주도권을 전복시키려 했으나 에이보르가 이수도, 고대 결사단도, 템플러도 아닌 암살자의 삶을 살기로 결정하면서 이를 거부한다. 이수의 자아를 압도했지만 자신의 일부로 인정하고 공생을 택했다.
이러한 자아 융합 과정을 거쳐 인물들은 각자 개인의 기준에서 더 나은 인물로 발달한다.
여기까지가 개인 해석이다.
피상적으론 '한 사람이 내면에서 일어나는 갈등을 통해 자신의 기준으로 더 나은 사람이 되는 과정'이라는 같은 결론에 도달하지만 원리가 다르다는 점에서 기존 해석을 재고해 볼 필요가 있다.
제작자의 의도를 우선으로 두고 해석을 수정, 보완해 보자.
맥데빗의 설정은 이수 환생이 한 세대(본인)나 바로 다음 세대까지 두 세대에 걸쳐서 일어난 일이라고 하면 자연스럽지만, 7만년도 더 된 과거로부터 셀 수 없을 만큼 많은 세대를 거쳐왔다고 하면 조금 미묘해지는 부분이 있다.
이제까지 세이지의 설정을 자연스럽게 이해할 수 있었던 건 인간의 DNA 원리를 따르기 때문이다.
이수의 기억이 담긴 DNA는 세대가 지날수록 자연스레 증식하게 되고 DNA를 보유한 각 개체는 조건에 따라 이수의 기억이 수면 위로 떠오르게 되는데, 이때 이를 자신의 기억이라 받아들여 세이지가 되는 경우가 있는가 하면 반대로 망상이라 외면하고 억눌러 세이지가 되지 않는 경우도 있다.
이 때문에 세이지는 몇 세대에 걸쳐서 나타나거나, 같은 세대에 동시에 여럿 나타날 수도 있다.
하지만 선대의 기억을 DNA에 기록해 후대에 물려준다는 같은 원리임에도 혼입효과를 겪는 데스몬드를 알타이어나 에지오의 환생이라 부르진 않는다.
그렇다면 자동적으로 이런 의문이 떠오르게 된다.
DNA를 통해 전해내려온 기억을 본다는 동일한 설정임에도, 에이보르가 본 오딘의 기억(세이지가 보는 이수의 기억)들을 다른 조상의 기억을 보는 경우와 차별화하여, 정확한 본인의 기억이라 확정 짓게 만드는 요인은 무엇인가?
라그나로크의 서막에서 이에 대해 풀어 주었다.
우선 세이지의 기반이 되는 어크 중심 개념들부터 하나씩 짚어 보자.
이하 어크에서 다루는 sf 설정들에 대해서는, 전문적인 지식이 있는 건 아니기 때문에 아주 깊게는 얘기할 수 없고, 게임에 나온 내용들로만 이야기하겠다.
어크 세계관은 피타고라스의 '만물은 수(數)로 이루어져 있다.' 는 가설을 기반으로 한다.
브라더후드에서 피타고라스 신전을 방문했을때 다빈치가 말해준다.
우리가 세상에 일어나는 여러 현상들을 수식으로 증명할 수 있는 건, 현실의 구성 요소 각각이 특정한 코드로 이루어져 있기 때문이다. 인간의 행동 방식조차 확률로 표현할 수 있다. 이러한 수식들은 인간이 지정한 것보단 해독한 것에 가깝다.
어크 시리즈에서 말하는 '코드'란 디지털이 아닌 현실을 말한다.
메타버스 아니다.
뭐 제작진이 노선을 바꿔서 이제부터 메타버스 하겠다하면 바로 적용할 수 있는 환경이긴 한데, 시리즈 1편부터 꾸준히 말하는 주제 중 하나가 '내세는 없다, 우리에게 주어진 시간은 현세뿐이니 지금에 충실하자.'인 데다 메타버스라기엔 설명이 안 되는 부분이 있어 현재로서는 아니다.
발할라~라그나로크의 서막(이하 서막)까지 나온 설정으로 봐서는 메타버스보단 멀티버스나 루프물 쪽이 더 가능성있다.
마찬가지 이유로 실현될 가능성 자체는 낮음, 정설은 '인류가 이수나 현대 인류 같은 큰 단위의 세대를 계속 거쳐오면서 같은 실패의 역사를 반복하고 있다'로 봐야 할 듯
이건 선대 이수 설정이 더 나와봐야 확정 지을 수 있겠다.
마찬가지로 '환상illusion' 또한 현실의 메타포지 게임 세상을 말하는 게 아니다. 이건 1편에서 알 무알림 대사를 주의 깊게 들어보면 알 수 있다.
오디세이에선 피타고라스가 이러한 가설을 말할 수 있었던걸 이수가 진실을 알려주었기 때문이라 설정했다.
이제까지 인류가 스스로의 힘으로 코드의 존재를 깨달았다 해석하고 피타고라스의 등장을 기대했던 입장에선 많이 아쉬운 부분이다.
해독한 코드를 응용해서 역으로 현실에 적용시키는 것을 우리는 기술이라 말한다.
원리를 이해한다=코드를 해독해 냈다.
세상은 이러한 개별 코드들이 정교하게 맞물려 돌아가는 거대한 시뮬레이션이다.
그리고 코드를 해독하는 능력이 이수가 가지고 있는 제6의 감각인 '지식, Knowledge'이다.
시간도 코드를 가지고 있다.
이수는 지식을 통해 이를 어느 정도 해독할 수 있다.
'어느 정도'라 표현한 이유는 확률을 볼 수 있어서다.
시간을 본다는 건 시간축 위에 놓인 사건을 본다는 말과 같다. 이수는 6의 감각으로 앞으로 일어날 사건의 확률을 계산할 수 있다. 이것이 데스몬드 사가부터 꾸준히 언급되는 이수의 예언이다.
이제까지의 패턴과 관련 요소들을 따져서 가장 일어날 확률이 높은 경우의 수를 뽑아내는 것으로, 권능이 아니라 기술*이다.
*
이수는 6의 감각+자유 의지 추구 정도만 뛰어나고 그 외엔 우리와 같다. 이해를 아득히 뛰어넘는 압도적인 기술력이 권능처럼 보여 후대에 신으로 여겨진 것이지 진짜 신인 건 아니다.
- 오디세이에서 이수 종족이 초인적인 신체 능력을 가지는 거처럼 잘못 묘사하는 바람에, 발할라 크오 이벤트로 as를 살짝 해주었다.
창을 잃음과 동시에 능력을 전부 잃게 함으로써, 오디세이의 스킬들이 이수 유전자로 인한 순수 신체 능력이 아니라 이수 유물의 기술력인 것으로 정정했다.(+반드시 자신만이 해야 한다며 다음 세대에 차례를 넘겨줄 생각 없이, 이수 유물을 오래도록 그러쥐고서 사용하고 다녔다는 게, 암살단 모토와 정반대 되는 행보라 창이라도 잃게 함)
- 서막에서도 낙하 데미지 상쇄 옵션을 스킬이 아닌 장비에 넣어 이수 고유의 신체 능력이 아닌 기술력인 것으로 정정했다.
- 이수의 DNA가 선악과에 면역이라는 건 잘못된 정보다.
영화에서 선악과의 원리를 DNA에 영향을 준다(아님)는 뉘앙스로 설명해서 그렇게 알려진 거 같은데, 1편부터 아니었다.
알타이어에게 선악과가 통하지 않았던 건 이수 혼혈이라서가 아니고, 이수에게 선악과가 통하지 않는 것도 혈통이 아닌 다른 이유 때문이다.
6의 감각 중 하나인 매의 눈은 어떻게 자신에게 우호적인 개체와 적대적인 개체를 분류할 수 있는가?
위에 말한 원리에 따라 자신이 가까운 미래에 대상과 어떤 관계를 이루는 지에 대한 코드를 보는 것이라 해석할 수 있다.
여기서 중요한 포인트는 바로 '확률'이다.
미래는 확률이며, 동시에 고정되어 있다.
이게 뭔 소리냐,
쉽게 설명하면 이런 거다.
1. 일주일 뒤에 시험이 있는데 아무것도 안 했다> 관측 시점의 조건에 따라 미래는 시험이 망하는 코드로 고정된 상태
여기서 이제,
1-1. 시험 당일까지 아무것도 안 한다> 시험이 망한다는 미래 코드가 유지되다 결괏값이 도출되는 당일에 확정됨
1-2. 일주일동안 공부를 한다> 결과에 영향을 주는 요인들이 관측 시점으로부터 변경됨에 따라, 망한다는 미래의 고정값이 풀리며 다른 경우의 수가 드러나기 시작> 관련 요인들의 통제 여부에 따라 변경 정도는 다르겠지만, 당일 결괏값이 관측 당시와는 다르게 확정됨
이를 보여주는게 레벨 속 알타이어의 네 번째 기억 조각이다.
알타이어가 압바스로부터 마시아프를 탈환하는 기억으로, 이때 매의 눈을 활성화하고 진행하게 되면 붉은 오라를 띄던 암살자들이 알타이어의 행동에 설득되어 푸른 오라로 바뀌는 걸 확인할 수 있다(미니맵으로도 확인 가능).
적대적인 관계라는 고정된 미래 코드를, 자신이 어떻게 행동하냐에 따라 우호적인 관계 코드로 바꿀 수 있다.
이러한 여러 사건 코드의 인과관계가 맞물려 하나의 결괏값을 도출하게 되는 교점, 그간의 누적된 요소들로 인해 반드시 일어날 사건 분기를 노드라고 한다.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노드 중 하나가 3편 엔딩이다.
이 '태양풍이 와 인류는 크나큰 손실을 입는다.'는 미확정 고정 노드를 '인류는 태양풍으로 인한 어떠한 손실도 받지 않는다.'는 확정값으로 만들기 위해 개입한 인물들이 미네르바를 비롯한 생존 이수들과 유노다.
6의 감각은 코드를 볼 수 있지만 직접 조작할 수는 없기 때문에, 확정된 과거는 물론이고 노드에 연결된 코드도 직접 제어할 수 없다.
대신 아직 미확정된 미래와 연결된 코드를 볼 수 있다는 점을 이용해, 확률을 유도하여 원하는 확정 코드로 만들 수는 있다.
혼돈이론은 사건의 무작위성이 아닌 예측 불가능함을 말한다.
나비의 날개짓이 언제, 어디서, 어느 개체로부터 시작되는 지 정확하게 파악하고 관련 요인들을 통제할 수 있다면, 토네이도 또한 통제할 수 있다.
이렇게 자신이 원하는 토네이도를 만들기 위해 미래에 개입하는 장치가 미네르바의 '디 아이, The Eye' 다.
오디세이 데이터베이스였나 데스몬드가 작동시킨 기계가 디 아이라고 잘못 나와있던 거로 기억하는데, 3의 기계는 디 아이가 아니다. 이는 유노와 미네르바의 대화를 들으면 알 수 있다.
디 아이는 발할라 아스가르드 라인-요툰헤임 미션에 나오는 군로드(=미네르바)의 거울이다. 이를 통해 관련 인물에게 접촉하여 이루고자 하는 미래로 유도할 수 있다.
3 엔딩부는 미네르바가 유노 모르게 남겨둔 디 아이를 통해 데스몬드가 기계를 제대로 작동시키는 지 확인하러 접속했다가, 유노의 계략을 알게 되어 작동하면 안 된다고 태세전환*하게 된 흐름으로, 당시 미네르바는 대재앙 직후의 먼 과거 시점에서 대화하고 있는 상황이다.
*
미네르바가 3편에서 입장을 바꾼 탓에 헷갈릴 수 있어서 정리
- 미네르바가 3편에서 기계를 작동시키면 안 된다 말린 이유는 오직 유노 때문이다.
유노가 풀려나 이수가 인류를 지배하는 세상이 다시 도래하게 두느니 차라리 작동을 안 시키는 게 낫다는 것이지, 유노가 없는 조건에선 인류를 위해 작동시켜야 한다는 쪽이다.
- 미네르바들이나 유노나 기계를 작동시켜야한다는 의견은 동일하지만 그 이유는 확실히 다르다.
미네르바 측: 이수의 몰락을 인정하고 이제 인간들에게 세대를 넘겨야 한다. 하지만 인간은 우리가 자유 의지를 축소해 숭배하고 복종하는 본능을 심어 만든 열등한 개체이기 때문에, 우리와 같은 고등한 수준에는 도달하지 못한다. 미래의 대재앙도 스스로 극복하지 못할 것이기에, 우리가 개입해서 도와야 한다.
유노 측: 인간들은 숭배하고 복종하는 본능을 가졌으므로, 그들보다 우월한 존재의 통제 아래에서야 완전한 평화를 얻을 수 있다. 인간들만 남은 세상은 혼돈뿐일 지니, 이수인 내가 다시 이들을 굽어살펴야 한다. +죽기 싫다
그리고 이 노드들을 전부 풀려고 시도한 인물들이 클레이와 알타이어다. 클레이는 단기적으로, 알타이어는 장기적으로 계획을 세웠는데, 공통적으로 레벨에서 이수의 계획을 막으려 했다.
에지오는 알타이어가 아무런 지혜의 말도 책도 남기지 않았다 말했지만 아니다. 알타이어는 분명히 메시지를 남겼다, 기억 조각을 통해서.
알타이어의 뜻은 명확하다.
'인류의 자유 의지를 지키면서 선악과를 사용할 수 있는 방법은 없다. 인류가 자유 의지를 통해 자력으로 이수의 기술력에 도달할 때까지, 유물을 사용하지 말고 악용하려는 무리들로부터 숨겨라.
앎은 곧 슬픔이니, 진실을 구태여 알고자 하지 말고 자신의 삶을 살아라. 하지만 진실을 좇는 것 역시 의미 있는 길이고, 이 말에 따르지 않는 것 또한 각자의 선택이니, 존중한다.'
= 이수에 의존하지 말고, 인류가 스스로의 힘으로 극복하고 성장할 수 있게 두어라.
발할라에서 레일라가 데스몬드에게 제안한 의견이 이 뜻이다.
알타이어는 이수와 정확히 같은 방법으로 맞대응했다.
알타이어는 레벨 시점에서 데스몬드가 이수의 말로 소모되는 것을 막고 데스몬드에게 자유를 줌으로, 이수로부터 인류의 완전한 해방을 이루고자 했다. -에지오도 포함해서
하지만 계획은 실패했다.
이 구간을 데스몬드 사가나 에지오 트릴로지로 이름 붙이는데, 사실은 에지오와 데스몬드라는 장기말을 두고, 암살단 진영의 클레이와 알타이어가 이수 진영과 수싸움을 벌이는 파워게임으로, 종국엔 이수 측, 그것도 강경파 이수인 유노가 최후의 승자가 되는 이야기다. 더 정확히는 유노도 아니고 제 3세력이었던 템플러 진영만 이득을 챙긴 이야기지.
* 이 부분은 break the code, break the node가 이수 전령 이전에 클레이도 했던 대사라 잘못 기억하고 있어서 생긴 해석 오류다.
클레이의 계획이 단순 자신과 같은 처지인 데스몬드를 구하려던 것이라 보는게 더 정확하다고 봐서 이수를 막을 계획에선 제외해야 함
발할라 데이터베이스에서 데스몬드 음성 파일을 들어보면, 템플러 측에 동의하는 것도 자유 의지로 인정해줘야 하지 않냐는 말을 한다. 실제로 데스몬드의 선택은 암살단이 아닌, 템플러 성향의 판단이다.
데스몬드의 선택은 암살단의 실패다.
그로인해 인류는 성장할 기회를 지나치고, 아무런 발전 없이 같은 역사를 반복한다.
레일라는 이 반복되는 역사의 희생자로, 데스몬드의 오마주 캐릭터다. 두 캐릭터는 같은 길을 걸었다.
하지만 사람들은 데스몬드를 영웅으로 칭송하면서 레일라는 빌런이라 비난한다.
이는 데스몬드를 단순히 좋아하는걸 넘어 숭배하고 있기 때문이다.
종교는 어떤 맥락 속에서 발생하는가.
어쩌면 시작점은 그리 거창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게임하면서도 데스몬드 때는 그런 거 없었으면서 레일라는 바로 목에 칩 꽂아버리고, 이수 유물의 영향이 있는 게 아닐까 의문만 던졌는데도 핑계 대지 말란 소리 하고, 데스몬드 케이스를 겪고도 왜 저러는가 싶었거든.
그러고 나서 노트북 음성파일 확인하는데, 데스몬드가 똑같이 조종당한 느낌이었다니까 니 탓 아니라며 그래도 넌 영웅이라고까지 말해주는 거 듣고 내가 다 상처받았다 와 진짜 레일라가 멘탈 튼튼한 캐릭터여서 다행이지.
발할라 엔딩보고 레일라가 미스티오스 노력 물거품으로 만들었다고 그렇게 욕을 하면서 데스몬드 찾던데, 데스몬드도 알타이어의 노력과 클레이의 희생을 물거품으로 만든 거 똑같다.
오히려 따져봤을 때 레일라는 카산드라가 '이수의 기술을 사용한 다음 다 썼으면 파괴해라'라고 직접 지시한 걸 그대로 따른 거뿐이라, 선택권이 없었다.
반면, 데스몬드는 알타이어가 선택권을 준 상태에서 스스로 사용하기를 선택했다.
그리고 이 데스몬드의 선택에서 힌트를 얻어 로키와 알레테이아가 부활 계획을 완성하게 된다.
발할라 마지막 챕터에서 바심의 대사 중 '즉흥적인 부분도 있었다'는 게 이걸 말한다.
발할라 현대 파트의 태양풍은 바심이 일으켰다.
발할라 엔딩에서 레일라가 지팡이를 떨어뜨린 걸 상기하자 데스몬드가 다 안다는 듯 씁쓸하게 반응한다.
데스몬드가 당시 대체 노드를 풀지 못했기 때문에 인류는 이수의 영향력에서 벗어날 기회를 놓쳤고, 아무런 발전 없이 역사는 반복되어 자신과 같은 이수의 희생자가 또 나오게 되었다.
그뿐이랴, 데스몬드의 희생으로 대재앙을 막은 걸, 앱스테르고 측에서 자신들의 기술력으로 해결한 것으로 날조했다.
같은 상황이 오더라도 기술력이 확보된 엡스테르고가 알아서 해결해 줄 거라 여기고, 인류는 당연히 아무런 대처법도 준비하지 않았다.
그래서 발할라에서 다시 위기가 왔을 때, 이를 방치하게 되어 예측되는 피해는 더 불어난 것뿐만 아니라, 템플러에 대한 인류의 의존도도 더욱 올라가게 되었고, 음지에선 또 한 번 이수의 기술력에 의지하고, 그렇게 또 한 사람이 제물로 바쳐졌다.
이번에도 역시나 배운 것 없이 흘러 지나갔기에, 다음에 같은 상황이 발생하면 다시 원점부터 시작해야 할 것이다.
알레테이아와 로키, 두 이수가 인류에 직접 간섭하게 되어, 이수의 영향력 또한 커졌다.
이수 기술 이미 있는 거 그거 쓰는 게 뭐가 그렇게 잘못됐나 싶을 건데, 이렇게 놓고 보면 바로 와닿을 것이다.
이수와 현대 인류와의 관계는 발전된 기술력을, 문화 기반을 가진 강대국과 상대적 약소국, 혹은 소수민족 간의 관계와 같은 전형적인 강자-약자 구도로 치환된다.
왜 3편 과거 파트 주인공이 코너일까.
코너를 관찰하다 보면 한 가지 흥미로운 점을 발견할 수 있다.
시작지점에서 코너는 '백인선망'이라는 속성을 가진다.
후반부에 자신이 속한 모호크 부족에 따라 복식을 바꾸는 장면은 이 설정에 기인하며, 코너가 그간의 경험을 통해 현실을 깨닫고 백인선망에서 깨어났음을 보여준다.
신이라는 명성을 가지고 더 발전된 문명을 누렸기 때문에, 이수들이 진정 우리를 위하고, 그들의 지침 또한 옳을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고 따랐던 데스몬드와 닮아있다.
굳이 레벨 기억 조각 따질 필요 없이 3편 과거 파트만으로도 데스몬드가 내려야 할 답이 무엇인지 보여줬다. 하지만 데스몬드는 꽤 오랜 시간 동안 코너의 여정을 생생히 체험했음에도 그 선택을 하지 않았다.
더해 놀랍게도 이 구도를 암시하는 부분이 1편 어딘가에 이미 있었다.
그러니까 데스몬드는 1편부터 자신의 선택이 무슨 의미인지 알려주는 사례를 계속 봐오고도, 현대 인류에 대한 이수의 간섭을 허용했다.
당연히 데스몬드/레일라 둘 중 어느 쪽이든 빌런이라 칭하는 건 부적절하다.
근본적인 원인은 이수들이고, 짜여진 판에서 이들은 도구 취급 당했을 뿐이다. 게다가 그 상황에서 당장에 사라질 수많은 목숨을 짊어지겠다 결심하고, 사용하지 않는다는 선택을 하기가 쉽지 않은 것도 사실이니까.
그래도 굳이 하나 고르자면 위대하신 데스몬드 님 쪽이 빌런이다.
어크 시리즈가 대중적이고 유저친화적인 데다 발매속도도 빠르다 보니, 내용도 단순한 양산형 안티 히어로물이라고 많이들 생각하는데, 전혀 그렇지 않다.
실상은 다소 복잡하다.
암살이라는 수단만 놓고 보면 안티 히어로로 분류돼야 하지만, 내용면에선 이런 극단적인 방식에 도리어 부정적인 입장을 보이며, 전달하는 메시지도 하나같이 정통 히어로물의 성격을 띤다.
1편부터 시리즈 모티브인 알 무알림(라쉬드 앗-딘 시난)과 그의 휘하에서 활동했던 마시아프 암살단의 방식을 부정적으로 표현하고, 주인공이 이를 개혁하는 내용으로 시작한다.
보통 알 무알림을 저지한 것이나 압바스로부터 마시아프를 탈환한 게 알타이어의 개혁이라고 알려져 있는데, 이건 계기와 과정 중 하나지 개혁 사항에 해당되진 않는다. 시리즈 내에서 알타이어가 뭘 바꿨다고 정확하게 짚어주지는 않지만, 유추할 수 있을 만큼 충분한 단서들을 준다.
마시아프 탈환만큼이나 익히 알려진 단서 중 하나가 암살검 개량이다.
왜 알타이어는 약지를 자르지 않아도 되도록 했을까.
여태 약지를 자른다는 건 어떤 의미였고, 그걸 더 이상 하지 않게 됐다는 건 무엇을 말해주는가.
이러한 전달 방식은 의도적인 것으로 레벨에서 알타이어가 아무런 직언도 남기지 않은 이유와 맞닿아 있다.
많이 압축해서 암살단은 '슈퍼 히어로를 지향하는 안티 히어로들'이라 할 수 있고, 암살자는 이 지향점이 이뤄질 미래를 위해 현재를 살아가는 사람들이다.
발할라 오프닝에서 쿄트베 클랜이 습격을 시작했을 때, 스발라는 '실제로 일어나기 전까진 확정된 게 아니다'라는 대사를 한다.
미래는 고정되어 있다. 하지만 우리의 결정으로 고정값을 바꿀 수 있다.
미네르바는 인간은 경험에서 아무런 배움을 얻지 못하고, 이수가 설계한 대로 숭배하고 복종하는 삶을 살며, 변함없이 같은 역사를 반복할 것이라 예언했다.
하지만 알타이어는 '우리의 현재는 스스로 선택한 모습'이라 주장하며 코드를 부술 수 있음을 증명했다.
코드를 부숴 노드를 풀어라. 우리는 예견된 것보다 더 나은 미래를 만들 수 있다.
그럼 현재 시점에서 우리에게 예견된 미래는 무엇일까.
어크는 크게 세 파트로 구성된다.
과거/현대/이수로 각각의 파트가 담당하는 역할이 있다.
실제 역사를 (양념 좀 쳐서)되짚어가며 조상들의 성공과 실패를 관찰하는 과거 파트는 '과거'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현실을 반영하면서 동일한 속도로 진행되는 현대 파트는 '현재'
그럼 이수 파트의 역할은 뭘까.
이수는 현대 인류 이전의 아주 오래된 과거 문명임과 동시에, 현대 인류보다 고도로 발달한 문명이라는 특징을 가진다.
이수 파트는 이 특징들이 융합되어, 예상되는 미래의 가능성 중 하나를 미리 보고 배우는 역할이 된다.
어크는 과거/현재/미래 세 파트로 이루어져 있으며, 그중 이수 파트는 '미래'다.
이수의 역사는 템플러가 목적을 달성한, 막아야 할 미래의 예시다.
의외지, 템플러 말대로라면 독재체제일 텐데, 흔히 볼 수 있는 디스토피아적인 묘사가 없다. 이는 무력이 아닌 사상의 통일로 얻어낸 결과기 때문이다. 전인류의 동의를 얻어 이루어낸 독재체제는 유토피아의 포장을 두를 것이다.
허세 떨면서 말했는데, 그냥 현재 형성된 계급 구조에서 누구도 의문이나 이의를 제기하지 않게 되어, 그대로 굳혀진 상태라고 보면 된다.
이 과정은 현재 진행형으로 우리가 눈치채지 못하는 사이에 형성되어 가고 있다.-는 것이 어크의 주장이다. 실제로 주변에서 전조들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이 때문에 이수, 고대 결사단, 템플러는 모두 정보의 독점과 그를 통한 정보 조작/통제, 우민화를 기본 속성으로 지니고 있다.
리버레이션~유니티를 해보면 대략 어떤 느낌인 지 알 수 있다.
보통 주인공인 암살단에 동의하니까 빌런인 템플러 측에 넘어갈 일 없을 거라 자신하지만, 사실 이게 어렵다.
템플러의 방식을 실제로 맞닥뜨리면 이게 뭐 어때서? 별로 나쁘지도 않고 괜찮은데? 란 생각이 들기 마련이다. 그게 이들의 전략이다. 솔직히 쉽고 편한 거 좋잖아.
잘못됐다고 딱 잘라 말하기도 애매하다. 그건 결국 사회가 정하는 것이라, 지금이야 1편의 명맥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지만 언젠가, 한 반세기쯤 지나 만들어진 어크는 주인공이 암살자의 복장을 하고서 템플러의 이상을 위해 움직이고 그걸 모두가 당연하게 받아들이면서 이게 암살자지 근본이지하며 열광하고 있을지도 모르지.
어크 이야기 나올 때마다 현대랑 이수 파트가 안 중요하다는 헛소리는 대체 어디서 자꾸 퍼지는지 모르겠다만, 세 파트 다 중요하다. 제작진은 현대 파트나 이수 설정이 중요하지 않다고 한 적이 없다. 오히려 분량을 늘리고 설정을 확장하려 계속 시도했다.
이번 고대 삼부작은 고여가는 시리즈를 환기시킬 겸 유입을 들이기 위한 시리즈다. 이런 유입을 위한 시리즈에 과거•현대•이수 세 가지 스토리 라인과 엔딩을 둔 이유가 뭐겠나. 알려진 바와 달리 세 파트가 동일한 비중을 가지고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있다-라고 어필하는 거다.
콘텐츠를 과거 파트로만 채워도 어크인 게 당연하다 여기듯이, 마찬가지로 플탐 50시간 내내 이수 이야기만 다룬대도 어크가 맞다.
라그나로크의 서막도 마찬가지다.
이번 서막에서 꽤나 중요한 사실이 여럿 밝혀졌다.
이제껏 이수가 멸망한 직접적인 원인이 태양풍이라 알려졌었는데 아니었다.
토바 대재앙은 자연재해가 아닌 인재였고, 이수는 자멸했다.
태양풍이 지구를 휩쓸거라는 계산이 나오자 이수는 이를 대비해 여러 가지 방법을 모색한다.
처음엔 이수 전부가 온전히 생존하는 방법들을 시도하다 불가능해지자, 차선책으로 종족이라도 보존할 수 있는 방법을 찾는 대신, 자신만 살겠다며 서로를 물어뜯기 시작한다.
와중에 이브가 선악과를 빼돌리고 이수의 진실을 인간들에게 알려 곳곳에서 혁명이 일어난다.
당시 수르트르는 발드르의 능력과 선대 이수의 기술을 이용해 대재앙으로부터 생존하려 했다.
오딘은 아들을 구하려 고군분투하지만 결국 발드르를 잃고 수르트르에게 복수한다.
용량보다 더 많은 양의 데이터를 욱여넣으면 신체가 버티지 못하고, 저장소에 담겨있지 않은 의식 코드는 소멸된다는 원리를 이용해 수르트르를 죽이려 했지만 살라카르만으로는 역부족이었다.
궁여지책으로 에이트리의 탑*으로 수르트르를 유인하고 신체가 약해진 틈을 타 살라카르를 다시 사용해 수르트르를 죽인다.
*
탑의 원리가 명확하게 나오지 않아서 이 부분은 다시 확인해봐야 함, 일단은 증폭시키는 기계로 추정된다. -3이나 발할라에 나온 방어용 장치는 아니라 함
이때 하늘을 가르고 라그나로크의 신호가 될 운명이란 수르트르의 검을 찔러 넣어 수르트르의 신체 회복을 저지하는데, 이것이 이수가 예지한 태양풍의 원인이 된다.
발드르의 죽음도 아니고 수르트르의 죽음도 아니고 살라카르를 사용해서도 아닌, 에이트리 탑에서 수르트르의 검을 사용한 행동이 라그나로크를 일으켜 태양풍이 지구를 덮치게 되었고, 그간의 전쟁 탓에 대비도 제대로 못하고 개체수도 줄어든 상태에서 대재앙을 맞은 이수는 종족을 유지할 수 없을 정도의 극소수 밖에 살아남지 못하여 결국 멸망한다.
이수는 태양풍을 막을 수 있었고, 대재앙 이후에도 살아남을 수 있었다.*
*
사실 라그나로크에 치명타를 날린 건 로키다. 서막까지 가는 일 없이 잘 끝낼 수 있었는데 로키 트롤짓에 일이 대차게 꼬였다.(코믹스)
건설자 사건 이후 로키는 에시르들에게 외면받게 되고, 그중 발드르만 로키에게 변화의 기회를 줘야 한다며 옹호해 주는 상태였다.
전쟁을 끝내기 위해 발드르는 에이사에게 정략결혼을 제안하기로 결심한다. 그리고 동행으로 로키를 데려간다.
그 여정 중에 발드르가 로키에게 자신의 약점이 겨우살이라는 정보를 공유한다. -원전에선 프레이야가 알려줌
발드르도 6의 감각이 있어서 로키가 자신을 배신하고 오딘에게 복수할 노드를 알고 있었지만, 자신과 동행하면서 보인 모습에 로키가 변했을 거라 믿어준 것이다. 실제 여정동안 둘이 돈독한 삼촌-조카 관계를 유지했다. 로키를 복수심으로부터 벗어나 자유롭게 해 주기 위해 노드를 풀려는 시도였다.
근데 여기서 로키가 오딘에 대한 복수에 눈이 돌아서, 겨우살이로 발드르를 무력화하고 수르트르에게 넘긴다.
여기에 추가로 적용되는 단서가 서막에서 처음 소개된 빛의 엘프의 존재다.
빛의 엘프(편의상 선대 이수라 칭함)는 이수보다 앞서 존재했던 이수들의 이수로, 이수와 동시대에 존재할 정도로 문명을 오래 유지했지만 (또)수르트르와 오딘의 합작으로 멸망했다.
서막은 선대 이수의 유물인 살라카르를 중심으로 진행되는데, 이수들이 이를 묘사하면서 마법이라는 표현을 쓰거나 정확한 원리를 알 수 없다는 식의 대사들을 한다. 이수 유물에 대한 현대 인류의 반응과 같다.
살라카르의 작동 원리를 관찰해 보면, 이그드라실의 전뇌 기술을 간소화하고 융합/주입하는 기능을 추가해 휴대용으로 만든 기계로 보인다. 선악과와는 사용처가 다르긴 한데, 선악과의 기능도 일부 있는 걸로 추측된다.
빛의 엘프를 설명할 때 영생을 산다고 했던가? 수명이 길다는 말을 하는 걸 보면, 살라카르가 거창한 목적으로 만든 특수한 기계가 아닌, 수명연장을 위해 보편적으로 사용했던 기계라 추정된다.
종합해서 봤을때, 빛의 엘프들이 이수보다 더 높은 기술력을 가졌다.
현대 인류가 선악과의 원리를 분석하지 못하는데 비해 이수는 살라카르를 어느 정도 분석할 수 있던걸 보면, 선대 이수와 이수 사이의 기술 격차는 크지 않았다.
빛의 엘프는 고유한 신체 능력도 가지고 있다.
발드르는 6의 감각뿐 아니라 이 능력을 추가로 가지고 있는 이수다.
오딘은 살라카르에 들어있는 빛이 발드르의 것이라 말하며 낮을 밤으로, 또는 그 반대가 되도록 하는 능력이라 말한다.
이는 빛을 다루는 능력이기도 하지만 시간을 다루는 능력이기도 하다. 그리고 공통적으로 코드를 제어할 수 있는 능력이다.
즉, 선대 이수는 이수가 가진 6의 감각의 상위 호환인 완성형 6의 감각 혹은 새로운 제7의 감각을 가진 한 단계 더 진화된 인류라 볼 수 있다.
이번 발할라에서 컨펌된 설정 중에 '현대 인류는 이수가 노예로 부리기 위해 유전자를 하등 하게 조작하여 만든 휴머노이드들이다'란 게 있다.
재밌는 게 현대 파트엔 피닉스 프로젝트라고 템플러가 이수 유전자를 복원하는 프로젝트가 있다.
템플러는 이수를 신으로 인정하지 않고 호의적으로 대하지도 않는다. 당연히 신을 부활시킨다 뭐 이런 이유로 휴머노이드를 만드는 건 아니고, 이수의 능력(매의 눈)을 가진 노예군단을 만들려는 목적이다.
이수와 같은 패턴이지, 마찬가지로 통제하기 쉽게 6의 감각을 제외하곤 현대 인류를 다운그레이드시킨 버전일 것이다.
발할라 고대 결사단 중 아우둔은 '가늠할 수 없는 수많은 세계와 그만큼의 태양이 함께 존재한다. Nine times nine thousand worlds and as many suns.'말한다.
이는 우리가 알고 있는 것보다 많은 인류 타임라인이 존재함을 알려준다.
빛의 엘프> 이수> 현대 인류처럼 선형으로 이어지거나, 동시다발적으로 존재하는 멀티버스 세계관이거나, 선악과를 통해 미래에 우리가 하고 있는 여러 세계관의 게임들을 봤거나, 절대 진실은 없다는 철학적 논제거나, 낮은 확률이지만 루프물의 경우로 나뉠 건데, 다른 가능성들에 대해선 확실한 추가 단서가 없어서 선형으로 두고 해석하겠다.
이를 종합해 보면 '인류가 이수나 현대 인류 같은 큰 단위의 세대를 계속 거쳐오면서 같은 실패의 역사를 반복하고 있다'에 더해서 '반복을 거칠수록 멸망 시점은 앞당겨지고 있으며, 그 과정에서 인류는 점차 퇴화하고 있다.'라는 결론이 나온다.
이제까지처럼 선대 인류의 과오를 그대로 답습하다간 현대 인류도 같은 결말을 더 이르게 맞을 것이다. 즉, 이른 종말이 현재 고정된 노드다.
제작진 중에서 서막의 리드인 소피아 스튜디오가 이수와 템플러 간의 유사성을 강조하며 이를 꾸준히 경고한다.
리버레이션~유니티는 템플러의 이러한 성질들에 대한 이해를 돕기 위해 만든 구간이다.
이 구간(특히 로그)이 템플러를 선역으로 그렸다거나 템플러나 암살단이나 그게 그거다라는 의도로, 그러니까 템플러를 옹호하기 위해 만들었다 알려져 있는데 아니다.
얘들도 사실 사정이 있어서 X
지피지기면 백전백승 O
로그의 의도가 잘 이해가지 않았다면 이 기준으로 스토리를 다시 보는 것도 좋다.
위에 템플러 측에 서는 것도 자유의지 어쩌고 하는 데스몬드의 말도 타인이 자신과 다른 의견을 가질 수도 있음을 받아들여야 한다 그런 거지, 템플러의 방식이 맞다고 인정해 줘야 한다는 게 아니다.
이해가 꼭 동의로 이어지는 것은 아니다.
예로 프로파일러는 범죄자를 이해한다, 하지만 그들에게 동의하진 않는다.
어떤 흐름으로 그런 이상을 가지게 되었는지, 왜 그런 방식을 따르려 하는지는 이해하지만 그렇다고 그게 옳은 게 되는 건 아니다. 이 시리즈는 템플러를 옹호하지 않는다.
그렇게 보이는 이유는 암살단이 템플러의 이상을 문제 삼는 게 아니라, 이상을 이루는 방식을 비판하기 때문이다. 1편에서 루시가 이 부분을 짚어준다.
암살단이 자유의 수호자라는 인상이 있는데, 일단 수호자란 거창한 뭔가도 아니고, 굳이 붙이더라도 자유가 아닌 자유와 질서 간 균형의 수호자라 해야 맞다.
항상 질서 쪽에서 균형을 무너뜨리기 때문에 자유의 편에 서게 되는 거다.
간단하게 자유가 승리하면 세상은 유토피아가 될까에 대한 문제다.
사람들이 일정 수 이상 모이면 규칙이 생긴다.
사람의 성향은 스펙트럼을 띄고 그 기준은 항상 상대적이기 때문에, 어느 그룹이든 성향 분포는 비슷하게 유지되며, 환경에 영향을 받아 언제든지 변질될 수 있다. 선을 모아놔도 그중에 악이 존재하게 된다. 어디든 극단적인 성향은 나타난다.
그래서 보통 상대적으로 선량한 사람들이 피해를 입지 않게 안전장치를 마련한다. 악인들이 모여도 저들끼리 손해보지 않으려고 규칙을 만든다, 괜히 악인이 아니라고 지켜질 확률이 낮은 거뿐이다.
암살단의 목적은 모든 사람들이 자유 의지를 보장받는 환경을 조성하는 것이기에 질서의 필요성을 인정한다.
템플러도 암살단도 평화를 위해 완벽한 질서를 추구한다.
템플러의 완벽한 질서가 100% 통제라면, 암살단의 완벽한 질서는 황금비다.
비율이 자유 쪽으로 치우치면 힘을 가진 쪽이 자유를 독식하는 경향을 보인다.
강자가 약자에게 행하는 혐오는 표현의 자유로, 약자의 표현의 자유는 반인륜적인 행위로 포장되어 금해진다.
자유의 가치가 높게 책정될수록 자유를 독점하려는 경향은 강해진다. 완벽한 자유를 얻는다는 건 자유에 관여된 모든 요소를 배제한다는 것인데, 이는 또 다른 절대 질서를 나타낸다. 절대 질서와 절대 자유는 같은 개념이다.
이를 보여주는 것이 3편 dlc 워싱턴의 폭정이다. 어느 쪽이든 극단적으로 치우치면 같은 모양새가 된다.
당연히 모두를 보장할 정확한 균형 지점은 없고, 사회는 경험을 축적하며 지속적으로 변화한다.
그래서 암살단은 고여선 안 되며, 계속 이에 대해 생각하고 이야기를 나누면서, 끊임없이 지금보다 더 나은 모델을 제시해야 한다. 근본이란 개념이 굳어질수록 암살단의 존재가 위협받는다.
그래서 알타이어가 갈아엎은 거다, 암살단 모델이 정체되고 낡았으니까.
마시아프 탈환 기억을 보면 모든 암살자가 바로 알타이어의 편에 서지 않는다, 여전히 붉은 오라가 남아있다.
자유 의지를 표방하는 이상 암살단이 승리하고 모든 것이 아름답게 마무리되는 그림은 나올 수 없다.
명확한 기준도, 목표지점도 없는 이 막연한 이상을 추구하기 위해 인류가 멸망할 때까지 수많은 사람들이 희생될 것이며, 그 끝이 지금보다 나을지조차 장담할 수 없다.
알 무알림은 선악과를 통해 본 이 진실을 감당할 수 없었기에 선악과를 사용하기로 마음먹는다.
1편에서 알 무알림의 대사를 잘 들어보면 선악과를 본격적으로 사용하기로 결정한 건 후반부고, 처음엔 정말로 암살단의 뜻에 따라, 사람들의 자유를 위해 선악과를 빼돌렸다는 걸 알 수 있다.
마지막 메모리 시퀀스 대사들에도 관련 내용이 나오는데, 대충 '지금 선악과를 사용하면 앞으로 희생될 수많은 목숨을 아낄 수 있다', '인간의 자유 의지의 산물이 아니라고 해도, 이 역할을 하는 것들이 이미 넘쳐나는데 거기에 선악과 하나 더한다고 뭐가 달라지나' 이런 말이다. 완전 멘탈이 박살 난 상태다.
알 무알림이 이루고자 했던 평화의 모델이 곰팡이 핀 유토피아라 어찌 되었든 간에 암살 대상은 됐을 거란건 일단 차치하고, 의도만 놓고 보면 평화를 위한 건 진심이었다.
그렇다고 알 무알림이 선량한 사람이라는 건 아니다. 독재 성향이 있는 꽉 막힌 사람인 건 여전하다.
이게 이 캐릭터가 잘 만들어진 부분인데, 인류를 위하는 마음도 좋고 현명했지만 그 시대 의식 수준의 한계를 뛰어넘지는 못했다. 그래서 사회가 당연시하는 것들을 똑같이 당연하다 여기고 틀에 갇혀, 그보다 발달된 개념을 생각해내지 못했다.
알 무알림이 선악과를 사용하지 않고 당시 마시아프 암살단 체제가 유지되었어도 결국 암살단은 도태되어 역사의 뒤켠으로 사라졌을 것이다. 정체된 지 오래고 쇄신할 의지도 없어 민심을 잃은 여러 종교들처럼 말이다.
다행히 알타이어-를 비롯해 그의 편에 함께한 동료들도-가 2023년 기준으로도 말랑한 뇌를 가진 데다, 대의에 한한 독보적인 성질머리를 가지고 있는 인물이라 한번 시원하게 뒤엎은 덕분에* 암살단의 명맥이 유지됐다.
*
이 개혁도 알타이어가 멘토가 되고 하루아침에 마법처럼 이루어지지는 않았다.
시대 흐름에 따라 변화를 이끌어내려는 알타이어에게 근본을 지켜야 한다며 반기를 들고 현상유지하려는 세력이 있었다.
그 중심인물이 압바스다.
세 번째 기억 조각은 단순 알타이어의 비극적인 개인사를 알리는 게 아니라 선대 암살단의 실패 사례를 보여준다.
알타이어, 마리아, 말릭들은 이걸 자신들이 주장하는 바에 따라 명예로운 방식으로 해결하려 했다. 상대방의 자유 의지를 존중하면서 변화를 이끄는 방식인 대화를 통해서 말이다.
평화적인 방법을 추구해야 한다는 건 레벨에서 갑자기 나온 이야기가 아니다. 1편 주요 서사 중 하나로, 알타이어를 관찰하다 보면 자연스레 깨달을 수 있도록 구성되어 있다. 알타이어는 마리아를 여성이라 살려준 게 아니다.
하지만 당시 사회는 토론과 설득으로 변화를 꾀할 기반이 마련되지 않았다. 거기다 모종의 이유로 알타이어 또한 준비되지 않은 상태였어서 큰 실패가 되었다.
그래서 일종의 절충안을 낸 게 네 번째 기억 조각에 나온 방법이다.
암살단이 이 이상 정체되게 둘 순 없어 무력을 사용했지만, 설득을 통해 변화시킬 수 있다는 가능성도 동시에 보여 준다.
자신의 대에서는 불가능했지만, 후대라면 힘이 아닌 대화를 통해 변화하는 세상을 이룰 수 있으리라 믿고, 기반을 다져놓은 것이 알타이어의 개혁이다.
현대 암살단은 이 기반 위에 세대를 거쳐 꾸준히 쌓아 올린 결과물이다. 그래서 알타이어를 현대 암살단의 시초라고 부르며, 현대 암살단은 암살 같은 극단적인 방법보단 정보전을 바탕으로 진실을 알리고 설득하는 방식을 위주로 운영된다.
같은 역사를 반복하는 듯 보이지만 그 사이에 확실히 세상은 변하고 있다.
그럼 알타이어는 완벽한 전설인가 하면, 그건 아니다.
1편 마지막에 네가 자신한 대로 선악과를 파괴하라고 종용하는 알 무알림의 환청을 듣고 알타이어가 할 수 없다며 주저하자, "아니, 할 수야 있지. 하지만 너는 그러지 않을 거다.(Yes, you can, Altair. But you won't.)"라는 환청이 다시 들리며 알타이어의 이야기가 마무리된다.
알타이어 또한 알 무알림과 마찬가지로 선악과에 현혹된 엔딩이다.
알타이어는 선악과에 현혹되어서 오래 지니고 있었고, 지적 호기심 때문도 물론 맞지만 단순 그 이유만이 아니라, 사용하고 싶어서 선악과를 연구했다.
블러드라인에 제대로 나오는데, 여기서 알타이어가 템플러와 별 다를 바 없는 방식으로 선악과를 한 번 사용한다.
어크가 템플러를 옹호하지 않는다 했지만 그렇다고 딱히 암살단을 옹호하지도 않는다. 시리즈에서 말하는 주장들에 암살단/암살자를 예외로 두지 않는다.
알타이어 또한 알 무알림처럼 진실을 마주하고 갈등한다.
자유 의지를 지키면서 선악과를 사용해서 희생 없이 이상을 이룰 방법을 계속 찾았다. 하지만 그런 방법은 없었다.
'선악과를 사용한다'가 '인간의 자유 의지를 보장한다'를 정면으로 부정하는 조건이라 전제부터 성립되지 않는다.
그럼 알타이어도 알 무알림처럼 변질된 암살자였나 하면 그건 또 아니다.
알타이어는 결국 진실을 감내하고서, 선악과를 사용하는 대신 자기 대에서 할 수 있는 전부를 해주고 후대에 차례를 넘긴다.
다림의 질문에 진실을 알려하지 말고 가족과 함께 네 삶을 살라한 이유기도 하다.
그래서 알타이어는 마지막에 알 무알림과 같지만 검은색이 아닌 흰색 로브를 입고 숨을 거둔다.
흑백은 선과 악, 옳고 그름을 말하는 고전적인 비유지.
같은 조건에선 같은 영향을 받는다. 차이점은 어떤 선택을 하는 가다.
레벨에서 이 비유를 사용한 인물이 하나 더 있다.
에지오다.
레벨의 에지오는 2나 브라더후드(이하 브후)와 달리 검은 옷을 입고 있다.
트레일러에서부터 에지오와 비슷한 검은 의상을 입은 템플러들-그것도 자신들이 무엇을 위해 싸우고 있는지 제대로 모를 익명의 병사들-과 에지오가 누가 누군지 구분이 안 갈 정도로 한대 뒤섞여 있는 사이에, 암살검을 꺼내는 순간, 순백의 알타이어 환영이 에지오를 지켜보다 고개를 돌리고 떠난다.
그리고 왼팔의 암살검이 부러진다.
이 영상은 그대로 내레이션을 입혀 레벨 오프닝에도 쓰인다.
레벨은 이야기의 전제 조건이 중요하다.
내레이션에서 에지오는 클라우디아에게 자신이 암살자로서 길을 잃었으며, 전설로 불리는 알타이어라면 이 모든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답을 줄지도 모른다는 이야기를 편지로 전한다.
레벨 시작지점에서 에지오는 암살자로서 의미와 목표를 잃은 상태다. 그래서 엔딩에서 암살검을 내려놓기 전까지, 에지오가 보여주는 행동 대부분이 잘못되어 있다.
튜토리얼 타겟 암살부터 상대에 대한 예우를 보이지 않고 욕을 한다던지, 예니체리에 접근하기 위해 시민들을 선동해 고기방패로 쓴다던지, 멘티에게는 훈계해 놓고 자신의 경우엔 남에게 책임을 전가한다던지 경악할만한 행동들을 한다. 더 중요한 건 이에 대해 본인이 아무런 문제를 감지하지 못한다.
표적이 그럴싸한 말을 할 때는 흘러 듣다가 '템플러 다운'말을 하자 역시 템플러 내 그럴 줄 알았다는 식으로 나오는 게 에지오의 상태를 가장 적나라하게 표현한다, 에지오는 암살단의 목적을 제대로 모르고 있다.
그래서 잘못됐으니 템플러를 막는다 <이게 아니라, 템플러니까 잘못됐다 <이게 돼서 템플러 박멸에만 집착하게 되었다.
암살단의 목적은 템플러 박멸이 아니다.
이는 에지오 캐릭터가 가지는 고유 특성 때문이다.
에지오는 간단히 말해 '암살자의 재능은 충만하지만 적성에는 맞지 않는'인물이다. 데스몬드랑 비슷하지.
이 캐릭터의 동기는 대의가 아니다. 내 사람들을 향한 애정이다.
2편과 브후 둘 다 사랑하는 이들을 위한 복수가 강력한 동기가 되어 에지오를 움직인다.
브후 이후 가족들을 비롯한 주변인들이 안정을 찾아 별다른 동기가 없어지게 되니 에지오는 방황하기 시작한다.
에지오가 평균 이상의 정의감과 도덕심을 가지고는 있지만, 삶을 다 바쳐 헌신할 정도로 대의를 추구하는 인물은 아니다.
애초에 자신이 원해서가 아니라 상황에 휩쓸려서 암살자가 되었고, 가족들과 함께 하니까, 주변에서 옳은 일이고 너만이 할 수 있다고 하니까 여기까지 온 거지, 에지오가 원하는 삶은 그냥 사랑하는 사람들과 함께 평범하고 행복하게 사는 거였다.
그래서 이상에 대한 부분은 코덱스나 기억 조각들을 통해 알타이어(대의광인)가 대신한다. 에지오는 철학적인 부분을 논하도록 설계된 캐릭터가 아니다. 평범한 우리가 공감하기 쉽도록 설계된 캐릭터다.
에지오가 나쁜 사람은 아니다 보니 이 때문에 혼자 고통받게 된다. 내가 살고 싶은 삶은 따로 있는데, 주변에선 의미 있는 옳은 길이라 하고 또 다들 당연하다는 듯이 그렇게 사니, 저버리기에 죄책감이 들어 교착상태가 지속된 것이다.
계속 삐딱선을 타던 에지오는 레벨 마지막 부분 소피아 미션에서부터 다시 예전의 모습을 되찾는다. 애정을 가진 대상의 위험이란 동기가 다시 작용했기 때문이다.
마시아프 도서관에 들어가기 전까지 에지오는 암살자의 삶을 계속 살 것처럼 말한다. 이제 소피아가 함께일 테니, 암살자로서 살아야 할 명분만 있으면 되었다.
그 끝에 알타이어가 내준 대답은 비어있는 도서관이다. 에지오에게 어떠한 명분도 주지 않았다.
주위에서 옳은 길이라고 해도, 너만이 할 수 있다고 해도, 그걸 따를 의무는 없다. 원치 않는다면 안 해도 된다.
우리들은 태어나면서부터 각 개체가 지닌 조건에 따라 사회로부터 특정한 노드를 부여받는다.
옛사람들이 가업을 잇거나 교육에 차등이 있는 걸 당연시했던 걸 생각해 보면 된다.
현재에도 지속되고 있는 당연한 삶들, 과연 응당한 것일까.
'코드를 부숴 노드를 풀어라'의 범위를 개인으로 좁히면 이러한 메시지가 된다. 이는 암살단의 '아무것도 진실이 아니며, 모든 것은 허용된다.'와도 연결된다.
에지오에겐 선택권이 있다.
그리고 데스몬드에게도 선택권이 있다.
에지오는 이를 깨닫자 곧장 암살검을 내려놓는다.
그리고 엠버에서 다시 백색을 되찾고, 사랑하는 사람들의 옆에서 마지막을 맞는다.
레벨 엔딩에서 에지오는 아마 자신과 비슷한 환경일 데스몬드에게도 선택권이 있다 말해주고 싶었을 것이다.
아이러니하게도 에지오의 말이 데스몬드에게 닿지 않았기에 데스몬드는 선택권을 가질 수 있었다.
알타이어는 왜 속 시원하게 말하지 않았을까.
자신이 에지오와 데스몬드에게 영향력을 가지고 있다는 걸 알기 때문이다.
이미 암살단 내에 전설이란 명성을 가지고 있는 데다, 데스몬드에겐 처음 동기화한 조상으로 삶의 일부를 직접 체험하기까지 해서 친밀감을 형성한 상태다. 에지오에게도 마찬가지로, 알타이어의 명성만으로 에지오는 마시아프까지 길을 떠났다.
알타이어가 아무리 뒤에 '내 말을 따르지 않아도 된다, 원하는 선택을 해라'란 말을 붙이더라도 그게 온전한 선택권을 주진 못한다.
알타이어에겐 에지오/데스몬드의 선택을 원하는 방향으로 유도할 힘이 있다. 이수가 그들에게 그랬듯이.
하지만 이 힘을 휘두르면 에지오/데스몬드의 선택이 어느 쪽이든 의미가 없다.
선악과를 그 장소에 둔 것도 마찬가지다. 엔딩이 강렬해서 착각할 수 있는데, 에지오가 마시아프로 온 목적, 데스몬드가 애니머스에 들어간 목적 모두 선악과가 아니다. 에지오가 암살단을 내려놓게 돕고, 이수의 계획을 막는 게 목적이면, 그냥 선악과를 못 찾게 만들면 되었다. 근데 기억 조각으로 위치를 알려준다.
선악과가 없으면 에지오는 선택을 할 수 없다.
클레이가 명확하게 말하지 않은 이유도 같을 것이다.
자유 의지는 선택권의 문제다.
에지오와 데스몬드의 관계도 마찬가지다.
에지오 역시 명성 있는 암살자고, 데스몬드에겐 알타이어보다 오래 동기화한 조상이라 더 높은 유대감을 형성했을 것이다.
여기서 에지오가 최대한 돌려 말해 조언을 한다고 해도 그게 진짜 조언의 역할을 하지 못한다.
오디세이에서 카산드라가 레일라에게 한 조언이 지시가 된 것처럼.
레벨레이션 엔딩은 알타이어가 선악과를 스스로 내려놓았기에, 알타이어로부터 에지오가 선악과를 넘겨받지 않았기에, 에지오의 말이 데스몬드에게 전달되지 못했기에 의미가 있다.
이걸 이해 못 하고, 레벨 엔딩 그대로 가져와서 우리 애는 알타이어보다 더 오랫동안 현혹 안되고 이수 유물 가지고 있었고~ 우리 애는 에지오랑 달리 현대 파트 주인공이랑 만나서 직접 유물도 넘겨주면서 제대로 지시까지 다 하고~ 하면서 자캐놀이한 게 오디세이 엔딩이다.
오디세이 엔딩 볼 때 이걸 지금 감동하라고 만든 건지 2.5천 년 치 멍청함을 뽐내는 카산드라한테 빡치라고 만든 건지 긴가민가하더라.
메리수를 만들고 자시고, 시리즈 핵심 주제를 뒤엎으면 안 되지 않을까.
'현혹됐다'는 표현 때문에 오해하기 쉬운데, 선악과는 현혹 기능이 따로 있는 게 아니라 그냥 금속 덩어리인 휴대용 오버테크 기계고, 이 기계가 가진 압도적인 기능을 사용하고픈 유혹을 떨치지 못한 것을 현혹됐다고 표현하는 것뿐이다. 꼭 극단적인 행동을 해야만 현혹상태인 게 아니다. 현혹은 개인의 선택이다.
그러니까 카산드라가 2.5천 년이나 되는 세월 동안 자신만이 할 수 있다며 이수 유물을 계속 소지하고 다닌 게 오히려 단단히 현혹된 상태고, 발할라에서 레일라가 뭘 하기도 전에, 그 오랜 시간 동안 이수 지시 아무 생각 없이 고분고분 들으면서 노예짓한 거에서부터 이미 한참 잘못되어 있었다. 뿐만 아니라 주인공 중 최장기간 소지한 걸 넘어 후대에게 자신의 뒤를 이어받으라 직접 지시까지 했다. 제작진이 내용을 모르는 탓에 캐릭터만 희대의 허수아비 됐다.
3편 후반부에 윌리엄 마일즈를 구한다는 명분으로 앱스테르고에 정면으로 쳐들어가 선악과를 과시하며 학살을 자행한 데스몬드도 마찬가지로 현혹된 상태다.
카산드라, 데스몬드 두 선대가 단추 잘못 끼운 거 레일라가 독박 다 썼다.
근데 남 탓 1도 안 하고 바로 상황을 타개할 답까지 제시하고, 이 정도면 부처의 반열에 오를 수 있을 듯
지금 신디-오리진/오디세이-발할라, 퀘벡이 박살내고 몬트리올(+소피아)이 수습하는 구도 반복 중인 거 짜증 나니까 어크 계속 담당할 거라면 공부 좀 했으면 좋겠다.
유저는 몰라도 되지만 제작진이면 알아야 할 거 아닌가, 이밖에도 치명적인 오류가 더 있다는 게 될 말인지.
퀘벡이 몬트리올과 다른 방향성을 가지는 건 딱히 문제 되지 않는다. 암살단/암살자에 대한 저들만의 해석이 있을 수 있지. 근데 그걸 굳이 다른 타이틀에까지 영향을 미치면서 해야 하는 건가 싶다.
어떻게 자캐놀이하는 제작진들은 어디든 하나같이 패턴이 똑같지, 단체로 연수라도 다니나.
보니까 퀘벡이 재미 추구를 가장 중요하게 둬서 그러는 거 같던데, 재미도 좋지만 이게 중심 주제가 있고 이미 설정이 한참 쌓인 시리즈물이라는 걸 좀 생각하고 만들어줬으면 한다. 기본 설정을 모르는 티가 너무 많이 난다.
그보다 위 내용에서 친근한 표현이 하나 있었다.
'알타이어에겐 에지오/데스몬드의 선택을 원하는 방향으로 유도할 힘이 있다.'
타인을 자신이 원하는 대로 생각하고 행동하게 만들 수 있는 힘, 선악과는 이를 전부 아우르는 메타포다.
이 힘에는 크게는 종교/문화/기술/권력/규모(주류-비주류) 등, 작게는 나이/명성/지위/재력/친밀감 또는 애정 등과 같이 관계를 비대칭으로 만들 수 있는 것은 무엇이든 포함되며, 그 중 중독 매개로는 약물(1편 가르니에 파트 참고)과 재미 같은 것들이 있다.
인간이 나고 가며 대부분 한 가지 이상 가지게 되는 이 힘을, 내가 가지고 있기 때문에 사용하는 것은 당연한 것일까?
여기서 이로운 목적을 위해선 강압적으로 사용해도 된다는 쪽이 템플러, 목적이 이롭더라도 강압적으로 사용해선 안된다는 쪽이 암살단이다.
이게 두 집단을 가르는 가장 큰 기준이다. 애매할 때 이 기준을 두고 보면 좀 나을 거다.
살다 보면 한 번씩 충동이 일기 마련이다. 사용하는 게 당연하다 생각할 수도 있다. 더 쉽고 편한 방법이니까.
이 충동을 참지 못하고 타인의 자유 의지를 무시한 채 힘을 휘두르는 게, 이수의 유물을 사용하는 것과 같다고 보면 된다.
이미 템플러는 종교/문화/기술/권력 전부를 갖추어 선악과 없이도 목적을 이룰 수 있다. 선악과를 찾는 건 과정을 간소화해서 목표에 빠르게 도달할 수 있어서 그렇다. 없어서 실행을 아예 못하고 그런 건 아니다. 말했다시피 야금야금 에덴을 형성하고 있는 중이다. -리버레이션 참고
그럼 여기서 자연스럽게 나올 질문이 있지.
암살단이 목적을 위해 살인을 하는 건 본인들이 주장하는 바와 모순되는 거 아닌가?
물론 관련 내용이 고스란히 2편의 알타이어 코덱스에 있다.
아까 알타이어의 개혁이 무엇을 목표로 한다 했는지 상기해 보자.
당연히 모순되는 행동이다. 하지만 현재를 관망하고만 있을 수도 없기에, 극단적인 방법을 사용하지 않을 환경을 꾸준히 조성하며 비중을 점차 줄여올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현대 파트를 보면 암살단이 먼저 공격적으로 나서는 상황이 별로 없다. 인피니티가 아카이브 형식으로 나오는 것도 이 때문이다. 현대 파트 메인으로 게임이 나오더라도 암살보단 와치 독스 스타일의 정보전 시스템으로 나올 거다.
'슈퍼 히어로를 지향하는 안티 히어로'라는 게 이 뜻이다. 암살단은 불살주의를 추구한다. 어둠 속에서 빛을 섬긴다는 표현과도 맞물린다.
1편에서 알타이어는 알 무알림과 이런 대화를 한다.
Altair: Herbs. This seems a strange method of control.
약초라. 특이한 통제 방법이군요.
Al Mualim: Our enemies have accused me of the same.
나도 적들에게 같은 비난을 받았었지.
A: The promise of paradise....
낙원에 대한 약조....
AM: They think there's a garden, overflowing with women and pleasure. But I drug you as Garnier did his men and tempt you with its rewards.
그들은 여자와 쾌락이 넘쳐흐르는 정원이 있다 생각하지. 가니에르가 그의 수하에게 그랬듯, 내가 너희들에게 약을 쓰고 낙원을 보상으로 꾀어낸다고 말이다.
A: They do not know the truth of it.
그들은 진실을 모릅니다.
AM: Which is how it must be.
그래야만 한다.
A: But if they knew the truth of it--that all we seek is peace...!
하지만 만약 그들(템플러)이 진실을 알게 된다면--우리가 단지 평화를 추구한다는 것을요...!
그리고 시브란드를 암살한 후에는 라피크에게 이렇게 말한다.
What if I'm wrong? What if these men are not meant to die? What if they mean well? Misguided perhaps, but pure in motive.
만약 내가 틀렸다면? 이들이 죽을 필요가 없었다면? 선의를 가지고 있었다면? 잘못된 접근 방식일지라도, 동기는 순수하다.
평화를 위한다는 목적이 일치한다면 대적하는 게 아니라 교류하면서 함께 방법을 찾아내는 게 더 맞는 거 아닌가? 서로의 목적이 같다는 걸 알리고 저들의 접근 방식이 잘못되었다 이해시킨 다음, 올바른 방향으로 교육하면 이렇게 죽고 죽일 필요 없이 공존할 수 있지 않을까?
나이브하지, 알타이어가 좀 그렇다. 근데 어쩌면 의외로 간단한 문제일 지도 모른다.
아이들이 처음 강아지를 만날 때, 흔히 애정을 표현한답시고 털을 쥐어뜯거나 몸으로 깔아뭉개는 행동을 한다. 올바른 방법을 모르기 때문이다. 순수한 동기에, 잘못된 접근 방법이다. 그렇다 해서 우리가 아이들을 없애진 않는다. 애정을 표현하는 올바른 접근 방식을 찾도록 유도하지.
나타나면 없애고, 나타나면 없애고, 고대 결사단이고 템플러고 세대별로 나타날 때마다 죽여 없애는 건 증상 완화제지 치료제가 아니다.
세상을 진짜로 변화시킬 방법은 폭력이 아닌 대화와 교육이다. 이를 알타이어와 마리아, 말릭들은 깨달았다.
암살단의 목적은 템플러 박멸이 아니라 템플러와의 공존이다.
템플러 측에서 협조가 안 되니까 대치 관계가 지속되고 있는 상황이다. 템플러 입장에서는 그래 줄 필요가 없거든.
한 번 실현될 뻔했었지, 셰이가 저지했지만.
알타이어는 왜 마리아를 살려주고 평화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공유했나.
마리아는 공존의 가능성을 보여준 첫 사례다.
마리아는 알타이어의 아내라서 암살단에 들어온 게 아니라, 대의에 관한 의견이 일치하여 암살자의 신분으로 암살단에 들어왔고*, 알타이어와 동등한 암살자로 활동했다.
*
로베르 사망 후 템플러 측에서 여성이라는 이유로 마리아를 내쳐서, 템플러 소속으로 교류를 하는 게 아니라 단신으로 활동하다 암살단에 입단했다.
시크릿 크루세이드(도서)와 게임에서 각자 알타이어-마리아 관계를 다르게 묘사한다. 거의 정반대인 데다 그 외의 부분도 미묘하게 다르기 때문에, 이 글에선 책을 배제하고 게임만 따랐다.
로베르 암살 시퀀스에서도 말로 해결해 보려고 먼저 시도한다. 실패했지만
로그-유니티 때부터 직설적으로 표현하기 시작해서 이때부터 노선이 바뀌었다고 알려져 있는데, 사실 1편부터 이 스탠스였다.
어크나 파크라이에서 말하는 공존은, 저항을 포기한 채 현상유지하자는 게 아니다. 본질을 개선하자는 말이다.
파크라이 6에서 클라라는 이번 혁명이 성공한다 해도 야라는 변하는 게 없을 거라 말했다. 왜냐, 세대를 넘기면서까지 지속된 전쟁 때문에 야라인들 사이에 폭력이 너무도 당연한 것이 되어 버렸으니까. 처음엔 폭력을 주저하던 디에고도 갈수록 힘의 편리함에 길들여지는 모습을 보인다.
그러니까 이대로라면 안톤 다음으로 권력을 잡는 사람이 누가 됐든, 안톤때와 똑같이 문제를 힘으로 해결하는 경향을 보일 거라, 또 다른 독재시대가 이어질 뿐이다. 힘, 폭력이란게 꼭 물리적인 것만을 말하는 건 아니다. 누군가 한 번은 이 폭력과 혐오의 연쇄를 끊어야 한다. 본질을 개선 않고 폭력만 주고받는 것이야말로 현상유지다.
공존이란 단어 때문에 당장에는 강자의 편에 서는 것 같아도, 결국 갈등과 폭력의 시발점이 되는 강자 측의 변화를 유도하는 것이라, 약자의 편에 선 판단이다.
이게 파크라이 6에서 클라라가 말한 이상이고, 이에 변화의 신호탄으로 클라라는 자신을 희생하려고 했다. 후안은 이걸 이미 다 알고 있었다. 그래서 진짜 이루어질 것 같은 낌새가 보이자, 클라라가 적에게 죽도록 유도하면서 갈등의 불씨를 다시 살린다.
후안은 혐오무리를 대표한다. 이들은 진짜 뭔가를 이루려고 몰려다니는 게 아니다. 과정 중 타인을 깔아뭉개는 데서 오는 우월감과 재미를 추구하는 것이기 때문에, 정의니 대의니 명분으로 달아두기만 하고 유효한 행동은 하지 않는다. 세상은 언제까지고 악랄하고 불행해야 한다. 그래서 조작을 해서까지 갈등을 유지하려 한다.
게임은 튜토리얼을 통해 이러한 클라라와 후안의 성향을 알려주면서, 엔딩 전까지 후안이 죽거나 영향력이 약해지지 않으면, 클라라가 죽고 혁명이 실패하며 다시 원점으로 돌아올 것이란 힌트를 준다.
혁명이란 명분 아래 사람 죽이며 우월감을 느끼는 재미로 이 게임을 하는 유저들은 후안과 같은 성향이기 때문에, 다니는 당연하게 후안을 저지하지 못하고 예상대로의 엔딩을 맞는다.
클라라가 안톤을 만나 대화할 결심을 하게 된 건, 다니가 진실을 숨겼기 때문이다. 다니가 고문당했을 때의 일을 사실대로 알리지 않고, 후안의 지시대로 '디에고를 살려줬단 걸 알고서 안톤이 날 그냥 풀어줬다'라고, 고문한 사실이나 죽이려 한 사실을 숨긴 채 좋게 포장해서 보고했다.
클라라는 다니와 안톤이 서로에게 인정을 베풀었다는 조각난 정보에서 가능성을 보고, 죽을 확률이 훨씬 높다는 걸 알면서도 안톤이 내민 손을 잡기로 결정한다. 안톤의 건강이 악화된 지금이라면, 디에고를 두고 얘기가 잘 풀릴지도 모른다. 자신의 선택이 단숨에 야라를 자유롭게 만들진 못해도, 그 계기는 되어 줄 수 있을 거라 판단했다. 클라라가 항상 말해왔던 목표는 야라의 자유다, 카스티요를 죽이는 것도 아니고, 자신이 야라를 자유롭게 만드는 것도 아닌. 클라라의 말엔 항상 free election이 들어가 있다. 자신이 지도자가 될 생각은 애초부터 없었다.
클라라는 당연히 후안에 대해 알고 있었고, 다니가 그와 같다는 것도 처음부터 알고 있었다. 근데, 디에고를 살려준 것을 기점으로 다니가 바뀌었다고 생각하게 된다. 그래서 자신이 없어도 뜻을 이어갈 사람이 있다 판단하고, 후안 몰래 다니에게만 계획을 말해주고 자신의 총을 물려준다. 둘이서 나눈 마지막 대화에서 분명, 다니는 클라라가 죽으러 간다는 것을 눈치챘다. 하지만 자신이 제공한 조작된 정보에 희망을 걸고 사지로 향한다는 말을 들었음에도, 사실을 정정하지 않는다. 클라라의 죽음을 명분으로 더 큰 폭력을 추구한다. 클라라는 다니를 믿었다. 하지만 다니는 재미를 택했다.
안톤은 클라라의 성향을 파악하고 있었다. 그리고 다니에 대해서도 제대로 파악하고 있었다, 클라라와 같지 않다는 것을. 그래서 다니의 말을 믿지 않고, 디에고와 동반자살을 한다.
공존이란 키워드를 공유해서 이 참에 파크라이 얘기도 잠깐 해봤다. 몬트리올에서 나오는 어크와 파크라이(3~6)는, 프로젝트 팀 간 교류가 많은 지 비슷한 결로 나온다. 동일 세대면 유사도가 더 높아진다.
글을 따라오면서 알타이어와 클라라가 같은 사상을 가졌다는 걸 이해했을 것이다.
알타이어는 주변에 자신과 뜻을 같이 해주는 다른 암살자들이 있었지만, 클라라는 유저를 포함한 그 누구도 뜻을 알아주고 함께해주지 않았다. 그래서 알타이어는 암살단 개혁에 성공하고, 클라라는 야라 혁명에 실패한다.
선악과의 메타포적 원리에 대해 이야기해 봤는데, 그럼 sf설정상의 원리는 뭘까?
선악과의 원리가 확실하게 설명된 적은 없고, 현재까지 나온 설정들을 조합해서 간단하게 정리하면 '가상현실 홀로그램 프로젝터&휴대용 슈퍼컴'정도 되겠다.
휴대용 슈퍼컴은 안에 담고 있는 정보량과 정보의 질을 말하는 것이고, 가상현실 홀로그램 프로젝터란 게 뭔지가 중요한데..
선악과의 원리를 짐작해 볼 수 있는 장면들이 1편에 나온다.
1편에서 알 무알림은 알타이어에게 선악과를 총 세 번 사용한다.
첫 번째는 튜토리얼 부분에서 알타이어를 칼로 찌를 때, 두 번째는 서재에서 알타이어에게 선악과를 보여줄 때, 세 번째는 마지막 전투 때, 이렇게 세 번이다.
두, 세 번째에선 선악과의 작용 원리를 같이 말하는데, 이게 말이 바뀐다.
서재에서 선악과를 사용할 때, 알 무알림은 선악과가 홍해를 가르고, 물을 와인으로 바꾸었으며, 들고 있는 사람은 바라본 사람들을 조종할 수 있다 '전해진다(as they say)'고 말한다.
앞서 세상은 코드로 이루어졌다 했으니 선악과가 이 코드를 바꾼다는 말이 된다. 그리고 이는 알 무알림 자신이 직접 확인하지 못한 정보다.
그런데 마지막 전투에서 선악과를 사용할 때는 홍해는 갈라진 적 없고, 물이 와인으로 변한 적도 없이 전부 다 '착각illusions*'이었다고 말이 바뀐다.
이로써 두 장면 사이에, 알 무알림이 선악과를 통해서 진실을 확인했다는 걸 알 수 있다.
* 주로 환상이라 번역되지만, 선악과의 작용 기제상 착각이 더 적합한 표현이다.
선악과는 코드를 바꾼 게 아니다.
그럼 실제 현실 코드는 여전히 물인 상태일 텐데 어떻게 와인이 된 걸까.
여기서 알타이어의 반응이 단서가 된다.
첫 번째 사용에서 알타이어는 생생한 죽음을 경험한다. 선악과가 완벽하게 작용했다.
그런데 두 번째로 사용했을 땐 효과가 없었다.
둘 사이 알타이어에게 무슨 변화가 있었길래.
이를 이해하기 위해선 일단 1편의 전제 조건을 알아야 한다.
시작지점에서 마시아프 암살단은 피라미드 구조에 철저한 분업체제를 이룬다.
실제 상황을 관찰하고 정보를 수집하는 인원, 그렇게 모인 정보를 관리하고 분류하는 인원, 모인 정보를 토대로 판단하고 지시를 내리는 인원, 지시를 받아 임무를 수행하는 인원이 분리되어 있다.
강등 전 알타이어는 다른 암살자들이 모은 자료를 토대로, 알 무알림이 지정한 타겟을 죽이러 가기만 하면 되는 위치였다.
즉, 실제 상황을 목격하거나 경험하진 못하고 '타인이 전하는 진실을 그대로 믿고 행동하는' 인물이었다.
1편에서 알 무알림은 이런 대사를 한다.
There is a difference, Altair, between what we are told to be true and what we see to be true. Most men do not bother to make the distinction. It is simpler that way.
But as an Assassin, it is your nature to notice, to question.
전달되는 진실과 목격하는 진실에는 차이가 있단다, 알타이어. 대부분은 이 간극을 지나치지, 더 간단하니까.
하지만 너는 암살자이기에 이를 본능적으로 깨닫고 질문하는 것이다.
1편에서 알타이어는 마스터 암살자 자리에서 노비스 위치로 강등당했다 단계별로 지위를 복구하면서, 정보 수집부터 해서 암살의 모든 과정을 직접 수행한다. 진실을 직접 경험하고 목격한다.
그 과정에서 사실 간의 간극을 눈치채고 알 무알림이 자신에게 진실한지 의심하기 시작하며, 알 무알림과 암살단은 절대적으로 옳을 것이란 맹신이 깨지게 된다.
서재에서 알타이어가 선악과에 걸려들지 않았던 건, 알 무알림이 말하는 진실이 아닌 눈에 보이는 진실을 믿었기 때문이다. 선악과가 그냥 금속 덩어리란 진실을 말이다.
마지막 전투에서 자신을 죽일 수 없다는 알 무알림의 거짓 진실(제자는 스승을 절대로 이길 수 없다는 조건)을 파훼한 것도 같은 원리다. 알 무알림이 신의 권능을 손에 넣은 초월자가 아닌 마구니에 씐 한낱 인간일 뿐이란 진실을 추구해서다.
아무도 믿지 마라, 모두를 의심해라 이런 말이 아니라 직접 확인하고 판단하라는 말이다.
만찬가지로, 이수에게 선악과가 통하지 않는 것도 선악과가 단순 기계란 사실을 알고, 어떻게 작동하는 지도 알고 있기 때문이다.
이수의 세 번째 방법이 이 원리를 극대화한 것이다.
단순하게 축약하면 믿음의 힘으로 극복하는 거로 보이나 나름의 원리가 있다.
이수가 '태양풍이 지구에 아무런 영향도 미치지 못한다'와 같은 코드를 인식값으로 입력해서 선악과가 이 인식 코드를 역으로 현실 코드에 덮어씌운 것을, 지구상의 모든 생명체가 진실이라 믿고 확정 지으면 현상을 상쇄할 수 있다.
이수 이외의 개체를 전부 완벽하게 통제할 수 있다는 가정하에선 가능한 이론이나, 현실에서 적용하기엔 무리가 있어 폐기된 것이지 아주 허무맹랑한 방법까진 아니다.
여기서 포인트가 선악과로 인해 덧씌워진 거짓이 진실로 굳혀진다는 건데, 위의 알타이어의 사례를 같이 고려해 보면 결론적으로 '현실의 코드를 대체 코드로 덧씌운 상태에서, 인지능력을 가진 개체가 어느 코드를 진짜라 인정하는 가에 따라 현실이 결정된다*' 볼 수 있다.
즉, 현실에서 진실은 인지능을 가진 개체가 인식하고 확정하기 전까지 미확정 상태로 존재한다. 이는 앞서 말한 미래가 가변적 고정 노드란 가설과 일치한다.
* 메타포적으론 '거짓이어도 다수가 진실이라 믿고 주장해서 사회에 받아들여지면 진실이 된다' 정도로 해석할 수 있다.
선악과가 내포하는 것들을 생각해 보면, 우리 주변이 선악과로 점철되어 있다는 걸 알 수 있다. 고로, 현실은 다중진실이 겹쳐있는 상태에서 우리의 결정에 따라 하나로 고정된 진실들의 집합이다. 자력으로 선악과를 전부 파악할 수도, 파훼할 수도 없다. 객관적인 시각을 가지기란 불가능하다. 우리는 우리가 믿기로 결정한 진실을 본다. 절대 진실은 존재하지 않는다. 아우둔이 말한 수많은 세상이란 주관적 진실로 이루어진 개개인의 세상을 말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그럼 더 구체적으로 들어가서, 이 가상 코드는 어떻게 투사되는가?
이는 오리진 dlc2 파라오의 저주를 통해 유추할 수 있다.
그전에 어크 세계관의 기본 설정 하나를 알고 가자.
글 초반부에서 어크의 주제를 언급하면서 '내세는 없다'는 조건을 붙여놨다.
1편에서 알 무알림은 알타이어와의 대화 중 적의 말이라고 다 헛소리라 단정하지 말라는 힌트를 준다.
암살자들 중 모든 진실을 알고 있는 인물이라면 알타이어, 클레이 그리고 이수 출신인 바심 정도밖에 없는데, 모두 암살단의 이상에 따라 진실을 함구했다. -바심은 현대 암살단에 일부 알려줄 계획으로 보임
반면 이수나 간부 이상의 고대 결사단/템플러들은 전부 진실을 알고 공유하고 있으며, 으레 독재자들이 그러하듯 신뢰도를 높이기 위해 자신의 궤변에 진실을 섞는다. 그래서 이들의 대사에서 암살단으로부터는 얻을 수 없는 고급 정보들을 알 수 있다.
1편 템플러 중 누군가가 '어떠한 형태로든 내세는 존재하지 않는다'는 진실을 알려 준다.
재밌는 건 발할라에서도 고대 결사단 중 누군가가 같은 방식으로 정보를 알려 준다.
1편에서 해당 정보를 주는 인물 =시브란드
Sibrand: Please, don't do this.
제발, 그만둬.
Altair: You are afraid.
두려워하는군.
S: Of course I am afraid.
당연히 두렵지.
A: But you'll be safe now. Held in the arms of your god.
하지만 이제 너희의 신의 품에서 안전할 거다.
S: Have my brothers taught you nothing? I know what waits for me, for all of us.
네 형제들이 아무것도 가르쳐주지 않은 건가? 난 나를, 우리를 기다리는 게 뭔지 알아.
A: If not your god, then what?
너희의 신이 아니라면, 뭐지?
S: Nothing. Nothing waits. And that is what I fear.
아무것도. 아무것도 없다. 그게 두려운 거다.
A: You don't believe...
믿음이 없나...
S: How could I given what I know? What I've seen? Our treasure was the proof.
어떻게 내가 그 사실을 알고서도 믿음을 줄 수 있겠나? 그걸 보고도? 그 유물은 증거다.
A: Proof of what?
무엇에 대한 증거?
S: That this life is all we have.
이 삶이 우리가 가진 전부라는 것.
발할라에서 해당 정보를 주는 인물 =쿄트베
시브란드와 비슷하게 말한다.
발할라엔 1편의 템플러들을 오마주한 표적들이 있다. 연출과 암살루틴, 대사 내용이 거의 같으니 1편을 해봤다면 한 번 맞혀보는 것도 재밌을 거다. -쿄트베는 시브란드 오마주는 아니고 대사만 겹침
쿄트베가 바린과의 약속을 지키지 않은 이유는 발할라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걸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신의를 지키든 말든 어차피 죽으면 아무것도 없다. 그래서 쿄트베는 생존에 집착하며 살았다.
즉, 튜토리얼 단계에서 앞으로 지겹도록 언급될 '발할라'는 실존하지 않는다는 정보를 주고 시작한다. 그래서 어크 구작 설정을 몰라도, 엔딩 즈음에 시구르드와 향하는 곳이 물리적으로 존재하는 공간이 아니라는 것을 미리 알고 갈 수 있다.
발할라가 전체적으로 사람들이 내세를 어떻게 받아들이는 지를 다루고 있어서, 이 정보를 아는 상태로 하는 것과 모르는 상태로 하는 게 좀 다르게 느껴질지도 모르겠다.
어크가 어떤 방식으로 스토리텔링을 하는지 보여주는 좋은 예신데, 이거 말고도 발할라 이전 작들의 메인 스토리 중 영상으로 한 번, 대사로 한 번, 이수 신전의 기계 장치를 나무로 표현한 적이 있다.
여기에 이수의 sf설정을 적용하면, '이그드라실=아홉 세계에 뿌리를 내린 거대한 나무=이수 세력권 전체에 데이터망을 구축한 메인 슈퍼 컴퓨터'를 초반부터 알고 시작할 수 있다.
내세가 없으므로 당연히 잊힌 전설도 가상공간이다.
서막에서 발드르가 데이터화된 상태로 살라카르 내에서 의식이 활성화됨+내세로 이동했다는 정보를 통해, 잊힌 전설이 해킹 과정을 시각화한 것이고, 회차를 거듭할수록 방화벽을 뚫기 쉬워지는 것을 로그 라이트 시스템으로 구현했음을 알 수 있다.
사실 내세가 없다는 정보는 이렇게 복잡하게 알아낼 필요 없다. 알타이어 코덱스 읽으면 된다. 그냥 적혀 있다.
어크의 이야기 전달 방식을 이해했으면 해서 좀 추가했는데, 아무튼 기존 설정에 따라 파라오의 저주에 나오는 내세는 진짜가 아니다. 현세가 그대로 이어진다는 이집트 내세의 특징을, 파라오들이 이수 기술을 이용해 현세의 위상 그대로 가상현실에 구현한 것으로 재해석했다. 고로, 파라오들보다 훨씬 후대인 바예크가 갈대밭에서 케무와 재회하는 그런 드라마틱한 연출은 나오는 게 불가능하다. 케무가 이수 기술로 전내화되지 않았으니까.
여기서 선악과가 왕가의 무덤의 가상현실과 연결된 상태에서 오류를 일으켜 내세의 존재들을 계속 현실로 투사하는 사건이 나온다. 선악과는 주변에 연결된 메인 슈퍼컴이나 내부 프로그램에서 가상현실을 먼저 구성한 다음, 이를 코드로 투사해 현실을 덧씌운다 볼 수 있다.
선악과를 단독으로 사용할 때는 금색의 폴리곤으로 투영되던 게, 메인컴에 연결됐을 땐 실물과 다를 바 없이 투영될 정도로 해상도 차이가 있다는 건, 선악과 내부 프로그램의 성능이 상대적으로 떨어진다고도 해석된다.
말 그대로 가상현실 홀로그램 프로젝터다. 이 눈속임을 실제라 믿게 되면 그대로 현실이 된다.
'사람을 조종할 수 있는 힘'이란 건 선악과 단일 효과라기보단 사용자의 재량, 사용자와 대상자 간의 관계, 사용 당시 대상자의 환경, 선악과에 대한 이해도(기술력 수준) 등이 복합적으로 어우러져 만들어진다.
결국 선악과는 사용자가 기본으로 가지고 있는 힘에 설득력을 더해주는 도구에 지나지 않는다.
선악과가 보여주는 가상현실을 사용자의 주장 외에 설명할 길이 없기 때문에 '이 사람의 권능이 물을 와인으로 바꾸었다.'라고 하는 말을 믿을 수밖에 없는 것이다.
홀로그램이란 개념을 알고 있는 현재에는 과거보다 선악과를 파훼하기 쉬울 것이다.
앞서 말했던 '이수의 기술력에 도달할 때까지'는 '선악과가 담은 내용이 더 이상 비밀이 아니게 될 때까지=선악과가 담고 있는 이수의 학술적 지식을 이해하게 될 때까지', 즉 선악과에 인류가 기술적으로 영향을 받지 않을 시점까지를 뜻하며, 현실 메타포로는 '인류가 자신의 자유 의지를 억압하려는 외부의 눈속임을 인식하고 불합리함에 저항할 정도로 의식 수준이 높아질 때까지'라 해석할 수 있다.
'발드르의 의식이 데이터화된 상태로 살라카르 내에서 활성화됐다'
이야기를 들입다 파게 된 원점으로 돌아왔다.
기억의 전승이 어떻게 동일인물임을 증명하는지에 대해 의문을 제시했는데, 그렇다면 에이보르가 가지고 있는 게 단순 오딘의 기억만이 아니라면 어떨까.
서막에선 살라카르를 통해 의식에 대한 개념을 다룬다.
아이나르가 살라카르를 설명할 때 흡수된 후그르들이 하나로 융합된 것이 아니라 따로 분리되어 있다는 말을 한다. 후그르=영혼=의식이라고 보면 우리의 의식은 기억과 마찬가지로 개체별로 개별적인 코드를 가져 폴더처럼 따로 분리해 저장할 수 있다.
레벨레이션의 애니머스 속에서 클레이가 데스몬드와 분리되어 독립적으로 존재했던 걸 떠올려보면 된다.
의식이란 기억을 포함한다.
기억코드를 포함하는 상위 단위인 의식코드가 개체의 정체성을 정의한다. 의식코드는 기억코드와 별개의 원리나 장소에 각인되어 있을 것이다. 이로 단순히 기억만 새겨져 있는 경우와도 분리할 수 있다.
- 조상의 기억에 의식이 붕괴되는 혼입효과가 일어나는 것으로 보아 서로 간섭이 가능한 정도로 유사하게 구성되어 있을 것이다.
- 오픈월드 애니머스의 역혼입효과(임의로 붙임, =게임 자유도)는 생체 내 직접 영향을 미치는 게 아니라 확인 불가
- 오딘의 기억코드는 일반 조상들의 기억코드와 달리 의식코드 저장 경로를 통해 보는 것이다.
이 저장소에 에이보르와 오딘의 의식코드가 동시에 존재하기 때문에 둘은 동일 인물로 취급한다.
이 가설이라면 현자가 이수의 정확한 환생이라는 게 설명된다.
근데 이 가설도 보면, 결국 의식코드도 DNA에 의해 이어져 온 거라 오딘의 의식이 각인된 최초의 인간의 후손들은 오딘의 의식코드를 잠재적으로 가지고 있게 된단 말이지. 이로 현자가 수직적으로나 수평적으로 여럿 발현된다는 건 설명이 되는데, 모든 개체가 발현을 보이는 건 아니라는 게 여전히 애매하다. 이 의식코드가 활성화되는 특정 조건이 필요하다.
솔직히 여기까지 설정 안 해놨을 거 같으니, 넘어가자. 생각해둔게 있긴 한데 뇌피셜이라 대충 이 정도면 되겠다. sf 설정은 앞으로도 계속 차곡차곡 채워질 거라 이 정도에서 마무리하고, 다른 관점에서 잠시 들여다보자.
이수의 의식코드는 7만 7천 년 전부터 인류의 DNA에 기록돼 확산했다. 우리 모두가 DNA에 이수의 성향을 세기고 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에 대해 교훈적인 관점에서는 이렇게 생각해 볼 수 있다.
개체마다 선의 역할과 악의 역할이 구분되어 태어나는 것이 아니라, 누구든 양측 모두를 잠재하고 태어난다. 트리거는 환경이다.
살아가면서 환경이 바뀌어 작든 크든 힘을 가지게 되는 때가 오면, 자신의 이익을 극대화하기 위해, 타인의 자유 의지를 무시하고 힘을 휘두르고자 하는 유혹과 오만함에 빠지는 일이 누구에게나 찾아온다.
이때 오딘의 길을 갈지, 에이보르의 길을 갈지는 각자의 선택에 달렸다.
이를 대부분의 사람들이 이해하는 날이 온다면 템플러는 더 이상 나타나지 않을 것이다.
사람들은 이기적인 것을 생존 전략이라고들 말한다. 개인 단위로 보면 맞는 말이다, 그렇다면 인간의 본성은 실로 이기적인 걸까.
정말로 인간의 본성이 이기적이라면 자유니 질서니 굳이 균형을 맞춰줄 필요가 없다. 힘의 논리로 돌아가는 모습을 보여야 한다. 균형은 강자를 위함이 아니다. 강자는 균형이 어느 쪽에 맞춰있든 생존할 수 있는 힘이 있다. 하지만 실제 우리들은 약자를 위해 균형을 좇는다.
암살단 같은 단체가 굳이 존재하지 않아도 사회는 어느 면이 극단적으로 치우치면 다른 면이 반작용으로 힘을 얻어 균형을 맞추는 경향을 보인다. 딱히 철학적 사고를 거치지 않고서도 자연스럽게 이 균형을 추구하는 모습이 인간의 본성이 이타적이란 걸 보여주는 증거라 생각한다. 성선설이라기보단 인류의 생존 본능이다. 고로, 이기적인 개체가 자연도태되는 환경이 조성될수록 인류 절멸 위험도는 낮아진다.
모든 선택은 이타적이어야 하고 자신의 이득을 추구해선 안 된다 X
타인이 관여된 선택을 할 때는 계산기에 공감능력도 같이 장착하자 O
꼭 모 아니면 도일 필요는 없다.
앞서 더 이상 균형을 위한 반작용이 기능을 하지 않는 상태가 템플러가 승리한 사회고, 이수가 이 사회의 예시라 했다.
여기에 (현대)인류 최초로 자정작용을 가동한 인물이 첫 번째 이브다.
어크는 에덴 동산에서 규율을 깨고 선악과를 먹은 이브를, 인류에게 자유 의지를 알린 영웅이자 인류 최초의 리더라 재해석하는 것을 기본으로 한다.
그리고 다시금 이수세대와 비슷한 환경에 정체되어 도돌이표를 찍고 있는 인류 사이에 나타나, 루프의 고리를 끊을 새로운 길을 제시한 레일라가 인류의 새로운 이브다.
그래서 발할라의 레일라 엔딩이 이브와 아담을 암시하는 연출로 마무리된다.
꼭 레일라뿐 아니라, 여성 암살자=여성 리더라, 이브로 비유되곤 한다. 아야 또한 신(의 대행, 고대 결사단)에 의해 통제당하는 세상이 오려하자, 지속적으로 자정작용을 할 대항 세력(감추어진 존재들)을 조직했다는 부분에서 이브와 같은 역할을 했다. 개인적으론 아야를 두 번째 이브, 레일라를 세 번째 이브로 해석하는데, 아야가 이브라는 암시가 따로 없어서 일단 레일라만 이브로 뒀다.
근데 이렇게 이브니, 신이니, 선악과니, 신비로운 이미지가 강하다 보니 오해가 있는 거 같아서, 암살단에 대해 좀 더 자세히 설명하겠다.
아야와 바예크는 질서에 치우쳐 균형을 무너뜨리는 세력들에 대항한 첫 인물들이 아니고, 감추어진 존재들(이하 편의상 히든원이라 칭함)-암살단도 최초의, 유일무이한 단체가 아니다.
대항 세력은 세대마다 항상 있었다. 당장에 바예크가 몸담고 있던 메자이부터가 이에 해당된다.
당시 메자이는 왕의 측근이라기보단 자경단에 가까운 상태였어서, 히든원의 역할과 똑같이 시와를 수호하는 걸 과업으로 여겼다. 물론 고대 결사단(이하 결사단)도 예의 주시하고 있었다. 그래서 바예크의 아버지는 시와에서 대를 물려 신전의 비밀을 지켜야 하니까 아야와 바예크가 시와에 정착하길 바랐고, 대의를 위해 더 넓은 세상으로 나가고자 하는 아야와 마찰이 있었다.
그러다 결사단이 메자이 사냥을 하기 시작하면서, 바예크의 아버지를 비롯한 메자이들이 전부 사망하게 되고, 석실의 비밀을 물려받지 못한 상태로 바예크가 마지막 메자이가 되었다.(데저트 오스)
그래서 게임에서 결사단이 석실을 열라며 메자이인 바예크를 꾀어내서 협박하는데, 정작 바예크는 아무것도 모르는 상황이 나온 것이다.
히든원-암살단이 대항 세력 중 기원전부터 현대까지 명맥을 이어온 가장 큰 규모의 단체라서 의의가 있는 거지, 유일하게 세상의 진실을 알고 이에 홀로 대항하는! <이런 건 아니다.
그래서 발할라 dlc2의 반란군이나 와치 독스 시리즈의 데드섹 같이, 암살단이 존재하지 않는 곳에는 이 역할을 대체하는 단체가 있다. 어크 현대에도 선악과에 대한 진실을 아는 에루디토나 이니시에이츠가 있다.
암살단이 생각보다 그렇게 막 특별한 존재가 아니다. 자신이 속한 사회를 더 좋게 만들고 싶은 사람들이 모인 비영리 단체 중 하나라고 생각하면 된다.
시리즈 주인공들이 하는 템플러 부수기 같은 건 특별한 케이스고, 대부분의 암살자들은 치안 유지나 소소한 도움을 주는 식으로 자신이 속한 사회를 더 나은 곳으로 만든다. 그래서 게임에도 사소해 보이는 미션들이 심심찮게 껴있다. 평소에는 그런 일 하는 사람들이다. 묵묵히 계속하다 보니 큰 일도 하게 되고 그러는 거지.
암살단도 사회 구성원들이기 때문에 사회와 상부상조하는 정도까진 괜찮지만, 본인이 원해서 선택한 길이니 책임을 회피하거나 전가해서는 안 된다.
내가 도와줬으니까, 내가 보호해주고 있으니까, 나는 암살자니까 당연히 나를 그만큼 대접해야 한다/내가 좋은 의도로 대의를 위해 헌신하고 있으니, 내가 이만큼 해줬으니 이 정도는 해도 된다/너는 나쁘니까 안 되지만 난 착하니까 해도 된다 <안 됨, 전부 노노임
사실 이게 히어로물에서 상당히 기본적이면서도 중요한 포인트였는데, 요즘엔 보기 힘들어진 추세다.
이걸 또 1차원적으로 받아들여서 본인들이 원해서 하는 거니까 고마워해줄 필요 없다 당연한 거다 이럴까 봐 덧붙이자면, 도움에 감사를 표하는 거야 인간이라면 당연한 도리고, 그 이상으로 암살단/암살자를 사회와 분리시켜 특권층화나 우상화하지 말라는 뜻이다. 어크는 이게 핵심이다.
이쯤 되면 알타이어가 왜 아무런 직언도 남기지 않았는지, 전설이라고는 하는데 왜 작중에선 한 번도 확실하게 업적을 알려주는 일이 없는지 진짜 이유를 눈치챘을 건데, 좀 이상하다는 생각 들지 않았어?
미네르바는 왜 데스몬드가 기계를 작동시켜 자신을 희생했을 때가 아닌, 기계를 작동시키지 않았을 때 인류에게 숭배받을 것이라 한 건지.
당장은 손해를 보더라도 기계를 작동시키지 않는 것이, 거시적으로 봤을 때 인류의 자유 의지를 지킬 수 있는 답이자, 인류에 대한 믿음을 담고 있는 선택지기 때문이다. -발할라 엔딩 레일라 대사 참고
시혜적인 태도로 계속 영향력을 행사하려는 이수로부터 인류의 지유 의지를 지키기 위한 불가피한 선택이었다, 너희들을 위해, 너희들을 믿어서 힘들게 내린 결정이었다 -하면 이건 이제 범인은 감히 하지 못할 영웅의 고뇌로, 인류를 진정으로 위하는 위대한 뜻이 내린 결단이 된다.
그리고 이걸 직접적으로 공표하는 순간 알타이어는 신이 되고, 그의 계시를 받들어 행동으로 옮긴 데스몬드는 메시아가 되며, 신조는 교리가 된다.
사람들은 암살단 마크를 프사에 올리고, 암살검을 숭배하며, 암살단의 세 가지 규칙을 주기도문처럼 외운다.
데스몬드가 얼마나 위대했는지, 그의 행적이 여러 매체로 재생산되어 퍼지며, 암살단/암살자란 단어만에 도 데스몬드를 자동반사로 언급한다. 암살단의 모든 것이 데스몬드의 덕분이다.
만약 찬양에 동참하지 않는다면 신성모독을 한 것처럼 분개하면서, 너는 진정한 암살단의 추종자가 아니라며 조롱하고 매도한다. 그리고 자신은 근본을 추구하는 정통이라는 데서 우월감을 느낀다.
이미 익숙한 모습이다.
어크뿐 아니라 파이널 크라이시스, 스나이더 사가 등 히어로물이 흔히 종교에 비유되는 건, 같은 양상을 보이기 때문이다.
종교는 어떤 맥락 속에서 발생하는가.
종교가 만들어지고 무너지는 루트야 환경에 따라 아주 다양하겠지만, 내가 얄팍한 식견으로나마 생각해 본 흐름은 이렇다.
사람들이 모이면 규칙이 생긴다. 가장 먼저 떠오르는 규칙이라 하면 법일 텐데, 자유를 보장해야 하기도 하고, 모든 사례를 다룰 수도 없기 때문에 법으로 커버를 치는 데는 한계가 생긴다. 법이 다 신경 쓸 수 없는 자잘한 부분들을 책임지는 게 도덕이다.
옛날엔 교육이 모두에게 제공되지 않았기 때문에 도덕은 자연적으로 사회의 자율에 맡겨진다. 그럼 배려와 존중이 암묵적인 의무가 아닌 상태에서, 자발적으로 협조하도록 같은 입장의 사람들이 설득해야 하는데, 문제가 있다.
사람들은 자신과 동등하거나 자신보다 낮은 위치에 있다 생각하는 사람의 설득은 듣기 싫어한다. 설득이 아니라 참견이라 생각하고, 가르치려 든다며 거부감을 느낀다.
그래서 동등하지 않은 우월한 가상의 존재를 만들거나, 실존 인물을 보다 특별하게 만들어 전달한다. 특별한 실존 인물 역은 무리의 리더가 담당하기도 한다. 리더도 본디 무리를 더 나은 길로 이끌기 위해 생겨났으니까. 설득이 힘들고 느린 길이기 때문에, 비교적 강제성이 있지만 보다 쉽고 빠른 착각을 수단으로 택한다. 이게 선악과다.
우월함, 특별함은 동경을 부르고, 동경에는 순종과 모방이 따른다.
이를 통해 변화를 이끄는데, 일단 사람이 모여야 뭘 하든 하겠지. 그래서 이목을 끌기 위해 재미를 가미한다. 이야기 속에 의미를 심어 엮는다.
예로부터 가장 잘 팔리는 건 역시 영웅 서사다. 꼭 히어로물이라 라벨 붙여진 북미 코믹스계열이 아니더라도, 대부분의 콘텐츠는 영웅물의 성격을 가진다. 의도를 전달하기에 편하기도 하고 일단 재밌잖아. 우리가 가진 평범함에서 오는 특별함에 대한 갈망을 채워주니까.
도덕이란 결국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에 대한 이야기다. 그러다 보니 각 상황에 대한 조언도 하게 되고, 삶을 여러 부분을 이해할 수 있도록 도와주거나, 두려움과 같은 부정적인 감정을 다스릴 수 있도록 보조하는 역할도 같이 하게 된다.
어느 세대나 사람들이 원하는 것, 궁금해하는 것, 두려워하는 것들은 다 비슷비슷하기 때문에 대부분 아래 네 가지를 담고 있다.
1.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 삶에 대한 안내 - 사회의 암묵적 규율
2. 바라는 것을 이룰 방법 - 동기 부여, 격려
3. 설명되지 않는 여러 현상들에 대한 설명 - 신의 존재
4. 내세 - 죽음에 대한 두려움을 상쇄시키고, 상실의 슬픔을 극복하도록 도움, 도덕적 안전장치
이런 이야기들이 하나, 둘 쌓여 하나의 종교 세계관이 만들어진다. 이것들은 전부 사람들이 더 좋은 삶을 살 수 있게 도움을 주는 수단이다.
분명 이러한 세계관 아래 모이는 모든 사람들이 좋은 피드백을 보이진 않을 것이다. 말했듯 사람의 성향은 스펙트럼을 띤다.
순수한 동기에 집중하는 사람이 늘어날수록 수단에 집중하는 사람이나 특별함에 자신을 의탁하는 사람들도 그만큼 몰려든다. 파이가 커질수록 극단적인 성향의 수도 점차 많아진다. 그러면서 자신들이 집중하는 부분, 받아들이는 성향에 따라 뿌리가 갈라진다.
그리고 규모가 커지면서 수단이 힘으로 작용할 수 있다는 걸 깨닫게 되는 사람들이 내부에서 늘어나고, 실제 힘에 현혹되는 사람들이 생긴다. 그렇게 선악과를 사용해 이득을 취하기 시작한다. 이 단계부터 소기의 목적은 뒷전이 된다. 이때부터 목적에 집중하는 사람들이 빠져나가면서 성향 비율에 변동이 생긴다.
시간이 지나면서 교육의 기회가 확대되어 종교를 가지지 않아도 도덕을 배울 수 있게 되고, 과학이 발달해 종교 대신 궁금증을 해소해 주기 시작한다. 그리고 사회가 발전하면서 사람들의 평균 지식, 의식 수준도 같이 올라간다. 문화마저 종교와 갈수록 분리되면서 종교를 대신할 것들이 넘쳐나, 더 이상 종교는 삶의 필수 요건이 아니게 된다.
그 과정에서 종교는 선택의 기로에 선다. 이게 만들어질 당시 사회를 반영해서 만든 터라 시간이 흐를수록 사회 흐름과 간극이 생기게 되는데, 이걸 반영하려면 시정해야 하는 부분이 생길 수밖에 없다. 그 당시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와 지금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가 달라지고, 설명할 수 없던 게 설명할 수 있어졌으니까. 일단 이 바꾼다는 게 우리가 맞다고 했던 게 틀렸었다 인정해야 하는 거라, 믿음을 잃을 부담이 있다. 믿음은 곧 힘이다.
그러다 보니 리스크를 안기 보단 현상유지를 택한다. 목적은 이제 완전히 고려 사항에서 제외된다. 목적을 위하는 사람은 이제 소수라, 고려하지 않아도 타격이 없다.
현 사회에 적용하기엔 논리가 설득력이 없고 대체할 것들도 많이 생겼기 때문에, 이제 믿음을 전제로 할 수 있는 사람들만 모인다.
그럼 결국 맹목적인 믿음과 수단만 남는다. 목적은 명분뿐이고, 겉치레가 모든 것이 되어, 단어나 복식 등에 1차원적인 반응을 보인다.
이 흐름에서 종교가 힘을 쓰기 시작한 뒤로, 외부에서 그것을 보고서는 힘을 목적으로 두고 시스템을 그대로 따라 한 게 사이비라고 보고, 분파나 파생 종교도 아마 저 선택의 기로에서 많이 생기지 않았을까 한다. 솔직히 깊게는 알지 못하는 분야라, 표면적으로 보이는 부분을 토대로 말했다. 실제 역사를 다루려는 건 아니니까.
난 '예수를 믿으면 천국 간다.'는 말이 존재나 권능에 대한 믿음을 얘기하는 게 아니라고 생각한다. 조언을 할 때 흔히 쓰는 '내 말 믿고 한 번 해봐'와 같이, '예수 말 믿고 하라는 대로 해보면, 천국에 갈 정도로 좋은 사람이 될 수 있을 거다.'란 뉘앙스로 그 시대 사람들에게 이로운 행위를 유도한 수단이 아닐까 한다.
그런데 여기서 믿음, 천국이란 단어에만 꽂혀서 문장을 직설적으로 받아들이고 집착하듯 따지고 있는 게 아닐는지,
암살자, 신조란 단어에만 꽂혀서 암살검의 존재 여부만 따지거나, 불살이란 단어에만 꽂혀 단순 킬카운트만 따지는 것처럼.
이전에 히어로물이 사람들의 삶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친다 한 게 이 말이다. 코믹스에만 한정된 게 아니라, 영웅물의 구도를 가진 작품들은 전부 종교와 같은 메커니즘으로 작용한다.
이러면 쉽게 현실과 창작을 분리해 생각하라 말한다. 실제로 무기를 쓴다든가 이런 티 나는 거야 당연히 구분하지, 근데 머릿속처럼 티 나지 않는 건 사람들이 구분을 잘 못한다. 우리가 분리를 잘했다면, 지금처럼 주인공의 외양에 신경을 쓰거나 인물이나 사건을 표현하는 방식에 대해 비판을 하지 않지. 구분 못한다. 선악과 설명할 때 왜 약물과 재미를 같이 묶었을까, 재미는 판단력을 둔화시키고 끊어내기도 힘들다. 처음엔 정신을 환기시킬 수 있을 정도의 재미에도 만족하지만, 나중에 가면 머리끝까지 짜릿하게 울리는 재미만을 찾게 된다. 뱃팸 때도 말했듯 캐릭터, 유명인들은 잘못을 해도 그들이 주는 재미 때문에 면죄부를 받곤 한다. 재미는 단발성이 아닌 중독으로 작용한다. 물론 보통은 과해지기 전에 자체적으로 조절한다.
물론 창작자들도 알고 있었다. 그래서 오락성이 강조되기 이전의 코믹스들을 보면 '이 캐릭터가 가지고 있는 뛰어난 외모, 월등한 힘이나 멋진 무기, 매력적인 이성과 함께 하는 모습 같은 것들이 이 캐릭터를 영웅으로 만드는 게 아니다.'라는 경고가 작품에 녹여져 있다. 발할라에선 암살검을 숭배하지 말라는 대사가 직설적으로 나오고, 파크라이 6에선 다니와 비쵸의 대화에서 '사람들이 나를 볼 때 다니라는 사람이 아닌 이것(총=힘)만 본다.'란 대사가 나온다. '네가 재미를 느끼는 그 특별함이 이 이야기의 의미가 아니다'라고 말한다.
창작자는 이 캐릭터가 완전무결한 존재가 아니라는 걸 상기시키기 위해 모순과 단점을 지적한다. 이전 뱃팸 글에서 지적했던 게 이 부분이다. 단점을 덮는 건 당장에 좋은 캐릭터처럼 보이게 만들지만, 광신을 가속한다. 이런 흐름은 비단 종교에 한정된 게 아니다. 히어로물을 포함한 창작물에서도 그렇고, 실존 인물을 대상으로도 보인다.
어크랑도 정말 똑같지 않나, 실제로 어크는 종교 서적과 비슷한 방식으로 내용을 전달하면서 종교와 같은 역할을 한다.
종교와 마찬가지로 우리가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에 대한 기본적인 안내를 해주고, 자신이 바라는 삶을 살라 북돋아 주고, 현실에서 아직 밝혀지지 않은 현상들에 대해 세계관 내에서 나름대로의 답(sf 설정들)을 제시해 주면서 궁금증을 해소해 준다.
시대에 맞춰 내세가 없다는 여론을 따르되, 내세가 없는 세상을 살아가면서 우리가 죽음에 대한 두려움과 상실의 아픔을 어떻게 다뤄야 할지를 똑같이 다룬다.
우리가 한창 열광했던 히어로물들은 종교가 기능을 잃자 바통을 이어받은 대체제들 중 하나다.
알다시피 요즘엔 히어로물들도 종교와 같이 민심을 잃고 있다. 요즘이라고 해도 시작점은 현재 나오고 있는 작품들이 아니다. 오락성이 강조된 순간부터다. 수단이었던 재미가 무엇보다 최우선시된 순간부터.
의미와 재미가 무조건 반비례하는 건 아니다. 둘 다 가져갈 수 있다. 근데 이제 한쪽만 챙겨도 목적(현대엔 돈이겠지)을 달성하는 거라 생각되면, 굳이 둘 다 챙기려 하지 않는다는 거지. 딱 카테고리를 벗어나지 않을 정도로만 챙긴다. 원래부터 오락만을 추구한 작품이면 상관이 없는데, 히어로물은 아니다. 그러다 보니 재미만 추구했을 경우, 히어로물이란 카테고리에 대한 기대치, 의미와 충돌이 일어나게 된다. 즉, 설득력이 떨어진다. 위에 말했듯 이제 맹신할 수 있는 사람만 남는다. 이렇게 말해도 여전히 둘 다 챙기는 좋은 히어로물은 나온다. 비율이 문제다.
앞서 퀘벡 스튜디오에 대해 말했을 때, 재밌으면 되는 거 아닌가란 생각이 들었을 수 있다.
그런데 정말로 재밌으면 그만일까?
그래서 발할라팀 대거 이탈하고 퀘벡이 메인 리드됐을 때 탈덕한 거, 미래가 없다.
이게 제작진들이 알타이어를 매번 대우하면서도, 어디가 그렇게 대단한 암살자인 지에 대해선 입을 꾹 다무는 이유다. 시리즈가 종교의 전철을 밟게 해선 안 된다.
발할라에선 이런 내용이 나온다.
알타이어가 마시아프 성을 비우고, 암살단을 다시 그림자 속으로 숨게 만든 이유다.
이러한 숭배를 피하기 위해서, 어크나 파크라이 속 주인공들은 범인에 가깝게 묘사되며, 주인공 대접 없이 NPC들과 거의 동등한 취급을 받고, 마지막 순간 정점에 올라서서 화려한 보상을 받는 결말도 시원스레 나오지 않는다. 실제 해보면서 느꼈을 거다, 주인공들이 친근하다. 빌런 또한 마찬가지다. 빌런이 거대해 보이는 건 그가 가진 힘 때문이지, 힘을 다 걷어낸 뒤 남은 개인은 평범한 사람이라 묘사한다. 마지막 보스전이 휘황찬란하고 그러지 않는다. 그래서 몬트리올 타이틀이 유사한 카테고리의 게임들에 비해 희열이 부족하다.
딜레마다, 이야기를 듣게 하려면 재미가 있어야 되는데, 재미를 챙길수록 더 큰 숭배를 부르고, 판단력을 떨어뜨려 전달력이 오히려 떨어지니 어려운 문제다. 선악과를 사용하지 말아야 한다는 걸 전달하기 위해, 선악과를 사용해야만 한다는 게 참 아이러니 하다.
뭐 이런저런 깊은 뜻이 있었네 어쩌네 해도 결국엔 데스몬드의 선택과 상관없이 숭배하는 단계로 넘어간 터라, 이수가 인간 잘알이란 걸 인증한 셈이 됐다. 게임 내적으로나 외적으로나 전부 실패했다.
지금 데스몬드가 부활하면 진짜 예수 되는 거지, 근 10년 동안 생각만 했으면서도 레일라가 말해줄 때까지 알타이어의 의도도 알아채지 못한 인물이 부활해 봤자 특별히 뭘 더 할 수 있다는 건지 모르겠다만.
유니티 엔딩에서 아르노는 이런 이야기를 한다.
The Creed of the Assassin Brotherhood teaches us that nothing is forbidden to us.
암살단의 신조는 우리를 금하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가르친다.
Once, I thought that meant we were free to do as we would. To pursue our ideals, no matter the cost.
한때는, 원하는 건 무엇이든 마음대로 할 수 있다는 뜻이라 생각했다. 이상을 좇기 위해서라면, 어떠한 대가를 치르더라도..
I understand now. Not a grant of permission. The Creed is a warning.
이제야 이해했다. 그건 허가가 아니었어, 경고였지.
Ideals too easily give way to dogma. Dogma becomes fanaticism.
이상은 너무도 쉽게 교리로 대체되고, 교리는 광신이 된다.
No higher power sits in judgement of us. No supreme being watches to punish us for our sins.
우리를 심판할 드높은 힘은 없다. 우리의 죄를 지켜보고 벌할 신은 존재하지 않는다.
In the end, only we ourselves can guard against our obsessions. Only we can decide whether the road we walk carries too high a toll.
결국, 우리의 집착을 경계할 수 있는 건 우리뿐이다. 우리가 걸어가는 길이 지나친 희생을 요구하지 않는지는 우리만이 판단할 수 있다.
암살자가 암살단을 맹신하여 광신도가 되는 것도 금해진 바 없기 때문에, 이를 경계해야 한다.
앞서 말했듯, 암살단/암살자라고 예외는 없다. 우리가 가고자 하는 좋은 길을 막는 것은 없듯이, 똑같이 나쁜 길도 막혀있지 않다.
우리는 상대의 잘못을 지적할 수 있기 때문에 자신은 그 잘못에 면역되어 있다는 착각을 하지만, 암살자라느니 무교인이라느니 그러한 타이틀은 아무것도 보장해주지 않는다.
위에 신랄하게 말했지만, 모든 종교가 답이 없는 상태라 생각하지 않는다. 여전히 목적에 충실한 종교는 있다. 같은 카테고리에서도 본질에 집중해 현실을 유연하게 반영하는 무리들이 있다. 여전히 순수한 동기에 집중해 종교를 따르는 사람들은 많다. 역시나 비율이 문제다. 북미 히어로물도 그렇고, 노출되는 비율이 인상을 좌우해서 그렇다. 그리고 이 비율은 언제라도 뒤집을 수 있다.
어크가 기독교를 기반으로 한 템플러를 메인 빌런으로 두고, 종교의 내세나 기적들은 전부 거짓이라는 식으로 재해석하지만, 종교를 믿거나 내세의 존재를 믿는 게 어리석다고 말하는 작품은 아니다. 암살단의 창시자인 아야와 바예크부터 신과 내세의 존재를 믿는 신자들이다.
선악과가 실존하든 신의 존재가 증명되든 지금과 크게 바뀌는 건 없을 것이다. 우리는 이미 선악과가 존재하고, 신이 존재하는 세상에 살고 있다.
신이 물리적으로 존재하는가 아닌가를 두고 싸우는 건 헛다리짚기다. 말했듯 맹신할 수 있는 사람만 남았기 때문에, 증명을 해본들 통하지 않는다. 믿는 대상의 잘못에 대해 정신승리하며 끝까지 실드치는 무리들을 봤을 거다. 종교는 신의 실존 여부가 핵심이 아니다.
과연 신이 없다는 깨달음은 인간을 현명하게 만들까?
신, 내세가 없다는 정보는 사람들을 현생에 집중하게 만들지만, 한탕주의자와 염세주의자의 비율도 함께 높인다. 근시안적이 되어 당장의 쾌락이나 생존, 실물에 집착하게 되고, 내세에서 변제할 일 없고 보상 받을 일 없기 때문에 쉽게 이기적인 판단을 하게 된다. 신에 대한 맹신에 빠지진 않겠지만 자신에 대한 맹신에 빠지기 쉬워진다. 오히려 불신에 대한 자신감에 다른 것에 대한 맹신을 눈치채지 못한다. 템플러나 기독교를 조롱하면서 데스몬드와 암살검을 숭배하는 것처럼. 흔히 극성팬들에게 광신도 이미지를 붙인다. 이미 다들 알고 있다, 종교의 문제가 아니라 사람의 문제라고.
템플러의 문제점도 기독교 자체가 원인인 건 아니다. 템플러는 그냥 대표적인 예시다. 신이니 내세니 전부 수단이다. 현재 종교가 신뢰받지 못하는 데에 있어 본질적인 문제점이 무엇인 지 파악하지 못한다면, 종교가 사라지더라도 다른 수단으로 옮겨가 똑같은 과정을 반복할 것이다. 사실은 이미 반복하고 있다. 종교가 현실과의 괴리가 선명해서 눈에 띄는 것뿐이다. 종교가 사라져도 눈앞에서 치웠으니 나아진 기분이 드는 것뿐이지, 진짜 나아진 게 아니다.
초등학생 땐가 엄청 예전에, 리더 성향만 있는 그룹보다 리더가 한 명인 그룹의 능률이 더 높았다는 실험 결과를 봤던 기억이 있다. 실제 사람들의 자율에 맡기면, 항상 소수의 리더가 이끄는 구도가 자연스레 형성된다.
이제까지처럼 소수의 이끄는 사람과 다수의 이끌림을 받는 사람들로 구성되는 게 이상적인 구조라는 거고, 앞으로도 이 구도가 반복적으로 형성될 텐데, 위에서 아래로 향하는 선악과의 힘과, 아래에서 위로 향하는 광신을 막을 수는 없는 걸까?
현상이 아닌 본질을 봐야 한다.
그럼 암살단의 본질은 뭐지?
암살단의 존재의 본질적인 목적은 인류의 자유 의지 수호다.
1편에서 알타이어는 라피크와 이런 대화를 한다.
Altair: I've never been one for politics.
난 정치에 관심 없어.
Rafiq: But surely you realize your every action shapes the course of this land's future. You are a politician too... in your own way.
하지만 자네도 자네의 모든 행동이 이 땅의 미래를 다듬는다는 것을 분명 알고 있잖나. 자네도 정치가야... 나름대로 말이지.
에지오와 데스몬드의 사례에서 볼 수 있듯, 자유 의지는 선택권의 문제다. 선택권은 곧 기회다.
암살단은 모든 사람들의 자유 의지가 보장되는 세상을 추구한다.
암살단은 모든 사람들의 선택권과 기회가 보장되는 세상을 추구한다.
곧, 암살단의 이상은 다양성 존중이다.
이 시리즈는 시작 지점에서부터 다양성에 대해 다뤄왔다.
알타이어의 서사는 폭력을 추구하는 철저한 남성 중심 사회 꼭대기에서 최고의 혜택을 누리던 인물이, 불합리함을 깨닫고 내부로부터 전복시켜 이방인과 여성을 포용하면서, 모든 혜택을 포기하고 그들과 동등한 위치에 스스로 내려와, 폭력 대신 평화에 대해 말하는 이야기다.
마리아는 템플러와의 공존 가능성을 보여준 것과 더불어 이방인+여성을 다시 받아들인 첫 사례로, 굉장히 상징적인 인물이다.
뿐만 아니라 알타이어는 남성과 여성 간 동등한 관계가 성립되지 않음에 문제를 느끼고, 아동 인권 실태를 인식했다.-알타이어 코덱스 참고
그래서 마리아와 같은 암살자로서 수평적인 부부 관계를 이루었고, 아이들에게도 다정한 아버지였다 기록된다.*
*
알타이어-마리아의 관계를 그대로 가져온 게 아야-바예크다.
- 부부 이전에 이상을 나누는 동료 관계/남편이 아내 바라기/관계의 주도권이 아내 쪽에 있음/아들의 죽음에 감정적이게 반응하는 쪽이 남편, 이성적으로 반응하는 쪽이 아내 등 겹치는 부분이 많다.
- 오리진에는 블러드라인 장면을 오마주한 부분도 있다.
코덱스에 자식이 생긴다면 암살자의 길을 강요하지 않고 사랑으로 키우겠다 다짐하는 내용이 있는 것으로 보아, 알타이어의 자식 둘 다 본인 의지로 암살자의 길을 택했다.
알 무알림은 사랑과 같은 감정은 우리를 나약하게 만든다 가르쳤지만, 알타이어는 우리가 정의를 위해 싸우며 누군가를 위해 희생하는 건 사랑 때문이라 말한다. 로그2의 퍼즐을 비롯한 여러 타이틀의 데이터베이스에는 패리스의 사과가 선악과라는 정보가 있다. 선악과를 두고 패리스를 설득하는 세 신의 모습이 3의 엔딩 구도와 비슷하다. 설득하는 신들도 미네르바와 유노로 같은데, 여기서 사랑의 신인 베누스만 없다. 사랑을 인류애라 두고 생각해 보면, 인류를 위해 신들과 같은 방식으로 데스몬드를 설득한 알타이어가 베누스라 해석할 수 있지 않을까.
최고는 단연코 구원 서사로는 보이지 않도록 만들었다는 것이다. 그 보다 회개에 가깝게 묘사된다.
23년 기준으로도 잘 만든 캐릭터고, 15년 전 기준으론 파격적인 캐릭터다. 그래서 어크는 여즉 알타이어를 근본으로 둔다.
왜 제작진이 한창 사랑받던 에지오와 데스몬드의 이야기를 칼같이 끝낸 건지 생각해 본 적 있나.
확실히 에지오-데스몬드 이야기 천년만년하는 게 평도 잘 받고 팔리기도 잘 팔렸을 거다.
제작진이 바보도 아니고, 미국 원주민에 흑인 혼혈 여성이라는 '덜 팔리는' 캐릭터들로 교체한 이유가 뭐라고 생각해?
큰 충격을 주고 극적인 전개를 이끌기 위해서? 아니다.
이 둘이 문화 전반에 걸쳐 이제까지 다 해 먹어 온 전형적인 주인공들이라서다.
여기서 데스몬드에게 유색인종 조상들이 있다는 점을 들먹이면 솔직히 눈 가리고 아웅이지. 누구 이입하라고 만든 캐릭터겠어.
블랙 플래그 현대파트의 데이터베이스에선 실험체 1의 인터뷰 파일을 들을 수 있다. 실험체 1은 아블린의 후손인 백인 남성이다.
제작진은 이 녹음 파일을 통해, 백인 남성들이 자신과 조건이 다른 이들에게 공감하는 훈련을 상대적으로 받지 못하기 때문에, 다른 인종이나 여성을 인간으로서 같게 받아들이고 이입하는데 어려움을 겪는다는 점을 지적한다. 레일라는 바예크에 이입하는데 전혀 지장이 없었다.
데스몬드가 코너의 이야기를 자신과 동일시하지 못했던 건, 인종적으로 약자의 입장이었던 경험이 없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3편에서 데스몬드 얼굴 모델링이 백인으로 인식되게 바뀐 데에도 이유가 있다 생각함
My story is one of many thousands, the world will not suffer if it ends too soon.
나의 이야기는 수많은 이야기들 중 하나다, 너무 빨리 끝나더라도 세상은 고통받지 않을 거다.
-어쌔신 크리드: 레벨레이션 오프닝 내레이션 중
왜 에지오가 퇴장하고 바로 다음 주자들이 코너와 아블린이었을까.
왜 데스몬드 이후 현대 파트 주인공의 인종, 성별 등이 특정되지 않도록 1인칭으로 바꾸었을까.
왜 4편부터 애니머스 기술력이 타인의 유전자 속 기억도 볼 수 있을 정도로 발전했다고 설정했을까.
이전에 리메이크할 자원과 인력으로 새로운 타이틀을 만드는 게 맞다고 한 이유다.
브후-레벨 사이가 첫 번째 도태의 기로였다. 거기서 제작진이 쉬운 길을 포기하고 어렵지만 정체되지 않는 길을 택했다.
유니티-오리진이 두 번째였는데, 여기서도 계속 같은 걸 반복하기보단 시리즈를 환기하는 방향으로 제작진이 노선을 틀었다. -원래는 유니티에서 하려 했는데 잘 안된 거로 보임
사실 1편 리메이크 안 해도 된다. 발할라가 1편 리메이크다. 오리진 때 하려던 거 잘 안 풀렸다더니 이 갈고 발할라에서 했더라.*
에이보르의 서사 대부분과 주변 인물 설정이 알타이어와 같고, 그를 통해 전달하고자 하는 바도 같다.
에이보르와 알타이어는 각자 서로에게 없는 고유 설정이 있어서 캐릭터 단위로는 서로를 완벽히 대체할 수 없지만, 타이틀 단위로는 1편을 발할라로 대체하는 게 가능하다. 발할라는 1편 베이스에 다른 내용들도 종합적으로 담고 있어서 반대로는 불가능하다. 오리진+발할라면 아예 구작을 안 해도 된다. 이전 타이틀에서 했던 내용들 여기 다 있다.
*
오리진이 1편을 완벽히 계승하진 못했지만, 그 시도의 흔적은 남아있다.
아야는 알타이어의 리메이크 캐릭터다.
클레오파트라-아야 관계 = 알 무알림-알타이어 관계
아야도 알타이어처럼 자신에게 대의의 길을 열어준 클레오파트라를 맹신하다, 진실을 직시한 뒤 맹신에서 깨어나 그에 대항한다. 오리진 코믹스에선 아무네트가 클레오파트라를 암살하는 부분이 나오는데, 여기서 클레오파트라가 알 무알림과 같은 성향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알 무알림의 경우와는 다르게, 클레오파트라는 아야와의 대화를 통해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고 스스로 독약을 마신다.
아야 또한 알타이어처럼 어린 나이부터 대의를 위하는 삶을 당연시했고, 한 단체의 수장으로 철학적 논제를 거쳐 인류를 위한 새로운 시스템을 확립했다.
그런데 아야 단독 주인공이 불가능해지게 되면서, 차선책으로 알타이어-마리아 관계를 가져와 바예크를 추가한 것으로 보인다.
글 도입부에 타이틀 아무거나 하나 엔딩 봤으면 이 글을 읽어도 된다 한 이유가, 타이틀 상관없이 과거 파트만 직선 진행으로 엔딩 봐도 시리즈 주제를 알 수 있기 때문이다. 주인공 서사에 다 녹여져 있고, 꼭 봐야 할 문서나 연출 같은 건 메인 진행할 때 반드시 지나치도록 디자인해 놓는다. 같은 내용을 타이틀마다 다른 사례를 들어서 계속 반복하고 있는 중이다.
그런데도 대부분은 이 글에 포함된 내용을 모른다.
시리즈에 대해서든 다루는 주제에 대해서든 사실 관심 없거든.
난 좀 그렇게 생각한다. 무언가를 이해하는 것을 결정짓는 요소는 관심이고, 지능은 이해에 걸리는 시간에 관여할 뿐이라고.
관심이 있다면 이해할 수 있다. 작품이든, 사람이든, 동물이든..
관심이 없기 때문에 본질을 같게 두고 표현 방법만 살짝씩 바꾸고 있음에도, 전혀 알아보지 못하고 형식치레만 기계적으로 따진다.
발할라의 음성 파일에서 데스몬드가 암살단은 모두에게 열려있다고 말하는 걸 들었을 때, 다양한 인종의 남성과 여성들이 후드를 쓰고 암살검을 찬 모습을 상상했을지 모르겠다.
그런데 세상에는 암살검을 차고 싶어도 찰 수 없는 사람들이 있다.
신체적으로도 그렇고, 환경적으로도 그렇다. 성격 때문에도 그렇겠지.
자신의 삶의 가능성과 책임을 모두 저버리고 풀타임 암살자의 삶을 살아갈 수 있는 신체 건강한 사람들은 오히려 극소수에 속한다.
그렇다면 과연 암살단은 모두에게 열려있다고 할 수 있는가.
1편엔 암살검을 사용할 수 없는 후천적 장애인 암살자가 나온다. 말릭이라고, 신랄한 어투가 매력인 친구다.
말릭은 초반에 암살검을 착용하는 왼팔을 잃고도 암살자 자격을 박탈당하지 않고 승진까지 해서 알타이어와 같은 계급이 된다. -서로를 다이Dai라고 부름*
*
알타이어 계급이 마스터 어쌔신인데 다이라고도 부르는 거로 보아, 명령 체계랑 암살자 급수를 따로 매기는 걸로 추측됨. first officer, second in command 비슷한 느낌인 듯
말릭은 1편 이후에도 알타이어의 최측근으로서 암살자의 삶을 이어간다.
발할라에서 말릭을 오마주한 캐릭터가 하이담이다.
하이담은 에이보르와 쿄트베의 홀름강 중 난입하다 팔에 완치가 불가능한 부상을 입고 암살검을 사용할 수 없게 된다.
그래서 하이담은 결사단에 대한 정보를 제공하고, 에이보르는 그 정보를 받아 까마귀&동맹 클랜에 위협이 되는 인물을 제거하는 상부상조 관계를 이룬다. 원칙주의자였다가 유연한 사고를 가지게 된 것 또한 말릭과 같다.
암살검을 찰 수 없지만 우리는 이들을 암살자라 여기는데 문제를 느끼지 않는다.
게다가 흔히들 엠버에서의 에지오를 얘기할 때, 마지막까지 암살자의 삶을 살았다 말한다.
이걸 두고, 암살검을 내려놓고 암살단을 떠났으니 더 이상 암살자가 아니다 지적하는 사람은 없다.
이미 다들 알고 있다. 암살검 소지 여부나 암살단 소속 여부가 이 캐릭터들을 암살자로 만드는 게 아니라는 것을 말이다.
알타이어는 왜 약지를 자르지 않아도 되도록 했을까.
게임하다 가끔 암살단이 사이비 같다는 느낌을 받았을 거다. 제대로 봤다.
알타이어의 세대까지 암살자는 도구였다. 세상의 평화를 위해 암살단의 명에 따라 휘둘리는 도구, 그래서 알타이어는 말릭에게 사과하지 않았다. 잘 벼려지지 않은 도구는 소모되는 게 당연하다.
하지만 모든 사람의 자유 의지에서 암살자의 자유 의지를 제외하는 게 과연 옳은 걸까.
위 아르노의 말에서 이런 문구가 있었다. '우리가 가는 길이 너무 지나친 희생을 요구하지 않는지'
최초의 히든원으로부터 약지절단은 실용적인 처치과 함께, 결의의 상징이 되었다.*
그런데 세대가 지나면서 약지를 자르지 않아도 되는 암살검을 만들 정도로 기술이 발전했음에도, 암살단은 암살검을 개량하기보단 암살자에게 손가락을 자르길 요구한다. 어느 순간부터 암살단은 광신이 됐다.
1편의 첫 신뢰의 도약은 암살자들이 암살단을 위해서라면 언제든지 죽을 준비가 되어 있다는 걸 과시하는 장면이다.
신뢰의 도약을 하고 나면, 옆자리에서 뛴 암살자가 다리가 부러진 걸 볼 수 있다. 그 옆에선 다른 암살자가 다친 사실을 숨겨야 한다 말한다.
짚단이 있다고 안전한 게 아니라 진짜 죽을지도 모를 일인데, 암살단이 뛰라면 그냥 뛰는 거다.
약지절단은 암살단의 목적을 위해 암살자의 삶을 전부 바치라는 요구다.
암살단의 신조를 위해 신뢰의 도약을 했던 알타이어는, 광신에서 벗어나자 자신 스스로의, 암살자의 신조를 위해 신뢰의 도약을 한다. 이와 같은 내용이 후속작들에도 반복해서 나온다.
즉, 암살자는 암살단을 위해 움직이는 사람이 아닌, 인간의 자유 의지에 대한 자신의 신조를 믿고 행동하는 사람이다. 암살단은 가이드라인이고, 암살검은 수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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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예크가 손가락을 잃은 게 암살자의 상징이 된 게 잘 전달이 안 되는 거 같아서 추가
바예크가 아야로부터 암살검을 받을 때, 처음에 주먹을 쥐고 사용하려는 걸 아야가 막고서 손을 펴 뒤로 젖혀준다. 당연히 바예크의 손가락은 멀쩡하다.
그니까 처음부터 손가락을 안 잘리고도 암살검은 사용할 수 있었다.
근데 유도로스를 암살할 때 몸싸움이 일어나는 돌발상황이 발생한다. 몸싸움을 하는 와중에 바예크는 유도로스를 막기 위해 손을 움켜쥐게 됐는데, 아야가 알려줬듯이 이 상태로 암살검을 쓰면 자신의 손가락도 잘린다. 그걸 알고 있음에도 바예크는 암살을 성공하기 위해 암살검을 사용한다.
만약 거기서 바예크가 자신을 먼저 생각했다면, 손가락은 잘리지 않았겠지만 암살은 실패했을 것이다.
이로 인해 약지절단이 히든원의 대의를 위해서라면 신체를 잃는 것도 감수한다는 결의를 보여주는 상징이 되었고, 여기에다 신경 쓸 거 없이 자유롭게 암살검을 사용하기 위함이란 실용적인 이유를 더해, 입단 시 약지를 자르게 되었다.
그리고 암살검을 위(손등 방향)로 차고, 아래(손목 안쪽 방향)로 차고, 이유는 간단하다. 위로 차는 애들은 위로 차도 괜찮아서 그렇게 찬 거고, 아래로 차는 애들은 아래로 차야해서 그렇게 찬 거다.
위로 차는 애들 특징 = 암살검 칼날이 완전히 덮여서 안 보임 + 적에게 암살검이 생소한 무기임 + 암살단의 관행을 따를 필요 없음
바예크가 처음 암살검 받을 때를 보면, 암살검이 다리우스가 쓰던 때랑 다르게 다 낡아서 날 밖에 안 남아 있는 상태다.
그 상태에서 누가 칼날 다 보이게 위로 찰까, 안 보이게 안쪽으로 숨기겠지. 게다가 첫 암살 장소가 목욕탕이다. 누구 죽이러 왔다고 광고하게요. 다시 말하지만 안쪽으로 찬다고 해서 무조건 손가락이 잘리진 않는다.
처음 히든원이 만들어질 당시 암살검 상태 때문에 안쪽으로 차던 게 그대로 관행으로 굳어졌다.
암살단의 세 가지 규율도 절대적이지 않다.
알 무알림에게 암살단의 규율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이제 깨달았다 말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알타이어는 세 번째 규율인 '암살단을 두고 타협하지 말라 Never compromise the Brotherhood'를 깬다.
이 당시 마시아프 암살단의 모든 활동은 알 무알림의 승인을 거쳐야 했는데, 알 무알림에게 상황을 보고하고 지시를 받는 과정을 무시하고, 알타이어는 자신의 신념에 따라 옳다고 생각한 방식을 강행한다.
로베르를 바로 따라가야 하는 일촉즉발 상태기도 하지만, 그보다 알 무알림의 결정을 온전히 신뢰할 수 없다 판단했기 때문이다.
사람들이 모이면 안전장치를 만든다 했다. 이 세 가지 규율이 암살단의 안전장치다.
이에 대해선 오리진 dlc1 감추어진 존재들에 나온다. 이 dlc가 아야와 바예크의 후일담으로만 알려져 있는데, 그게 아니라 암살단의 세 가지 규율이 생겨난 배경을 다룬다. 이야기는 발할라 마가스 코덱스로 이어진다.
목적이 아닌 수단이다. 암살단은 이 세 가지를 지키는 게 목적이 아니다.
암살검 개량은 더 이상 암살단에 목숨/삶을 바치지 않아도 괜찮다는 무언의 허가다.
에지오는 이를 암살자들에게 자유를 주었다라 표현했지, 그 자신도 레벨 엔딩에서 알타이어를 통해 자유를 얻었고.
그래서 개혁 이후 암살단은 이전의 피라미드 분업체제가 아닌, 암살자의 자율적인 참여를 위주로 돌아간다. 레벨의 멘토-멘티 미션을 해보면 감이 올 거다.
유니티에서 아르노가 엘리즈를 무턱대고 암살단으로 데리고 왔는데도 별말 않았던 것도, 아르노의 자율적인 판단을 믿었기 때문이다. 아르노가 이걸 마음대로 해도 된다 받아들이고 날뛰다 보니 암살단의 존재에 위해가 가해질 정도가 되어서 결국 제명당한다.
보면 알겠지만 내부가 취약해서 유지하기 까다로운 단체다. 그렇다고 대책없는 게 아니라, 자유 의지를 위한다는 걸 걸어두면 그게 일당백으로 커버가 되는 원리를 노린 거다. 타인의 자유 의지를 고려하며 판단해야 하기 때문에 자동적으로 법 없이도 살 수 있는 사람이 되는 원리지.
어차피 암살단이 이루는 미래는 폭력이 아닌 대화를 사용할 거라, 언젠가는 암살검을 완전히 내려놓을 때가 올 것이다.
그리고 우리의 목적이 모든 사람들의 자유 의지를 위하는 것이고, 그걸 이룰 수단이 교육이라는 것도 알았다면, 우리의 이야기를 들어줄 수 있는 사람들은 될 수 있는 한 전부 받아들일 수 있어야 하지 않을까. 제약을 둘수록 목표에서 멀어진다. 자신이 이 시리즈에서 지키려는 것이 근본이 아닌, 특별함뿐일지도 모른다.
... our goal must be to scatter our operations.
우리의 업을 확산시키는 걸 목표로 해야 해.
To live and work among the people we protect, just as Altaïr Ibn-LaʼAhad once counseled.
우리가 보호하는 사람들 사이에서 일하며 살아가는 거지, 알타이어 이븐-라'아하드가 조언했듯이.
-어쌔신 크리드 Ⅳ: 블랙 플래그, 아흐 타바이의 대사 중
암살단의 세 가지 규율은 현대에 와서 이렇게 해석할 수 있다.
무고한 자에게 칼을 겨누지 말라 = 무고한 자를 몰아세우지 마라(힘에 대한 경계)
평이한 광경 속에 몸을 숨겨라 = 평범함 중 하나여라(다양성 존중, 우상화 경계)
암살단을 두고 타협하지 말라 = 자유 의지를 위하는 마음을 타협하지 마라(공감능력)
달라지는 건 없다.
위에 선악과 항목에서도 그렇고, 종교 항목에서도 그렇고, 결국 다 같은 결론에 다다른다.
타인의 자유 의지를 위하는 것은 곧 공감능력이다.
세상의 평화를 이루기 위해선 공감능력을 학습해야 한다.
지금 문화 전반에 걸쳐하고 있는 게 이거다.
암살자는 현재를 만들어낸/만들어 내고 있는 사람들의 오마주다.
알 무알림의 이상 세계가 곰팡이 핀 유토피아라 했다. 알 무알림의 모두에 이방인과 성소수자, 여성과 아동은 없었다. 조지 워싱턴의 모든 사람들에도 코너의 자리는 없었다.
암살단의 '모든 사람들'은 정말로 모두를 포괄하는가.
이에 대해 다루는 게 블랙 플래그(이하 블플)의 현대 파트다.
어크 현대 파트의 컨셉을 설명하자면, 우선 역사를 오락거리로만 받아들이는 유비 소프트는 템플러와 협력 관계다.
실제 현실에서 시판되는 어크 시리즈는 지금 우리가 하는 것과는 내용이 다른, 왜곡된 역사를 담고 있다.
이를 통해, 자유 의지는 극단적인 양상으로 혼란만을 조장하므로 우리에겐 강력한 질서가 필요하며, 암살단이 말하는 모든 사람은 실제 모두를 포함하지 않기에, 진정 모두를 위하고 포용하는 템플러가 옳다고 정치질을 하고 있는 중이다.
리버레이션 메인 아트를 보고 아블린이 기존 암살자의 복식을 따르지 않는 것에 이상함을 느꼈을 거다.
리버레이션은 시중에 템플러의 이야기로 소개된다. 그래서 아블린은 코너가 아니라 헤이덤과 비슷한 복장을 하고 있다.
우리가 하는 리버레이션은 에루디토에게 해킹당한 버전으로, 템플러가 조작한 장면의 원본을 함께 볼 수 있다.
보면 템플러의 이미지를 안 좋게 만들 대화들이 수정되고, 엔딩에서 아블린이 템플러를 암살한 게 아니라 템플러로 전향하는 것으로 왜곡했다는 사실이 확인 가능하다.
이를 통해 남성 중심인 암살단과는 달리, 우리 템플러에선 이렇게 뛰어난 여성들의 활동을 적극 장려하고 있었다고 이미지 마케팅을 한다.
그리고 다음 작품으로 전형적인 백인 남성 판타지를 담은 에드워드의 이야기를 암살자 시리즈로 소개한다.
블플 데이터베이스를 보면 알타이어, 에지오, 코너의 시장분석 영상을 볼 수 있는데, 하나같이 부적합 판정을 받는다.
그런데 에드워드의 케이스는 아주 긍정적인 피드백을 받으며, 수월하게 프로젝트가 진행된다. 에드워드가 한량 백인 남성인 데다 해적이기까지 하니, 극단적인 자유의 단점을 신랄하게 보여줄 수 있는 아주 좋은 소재다.
데이터베이스에 있는 트레일러 영상을 보면 '어느 것도 성스럽지 않으며, 모두가 럼주, 약탈 그리고 여자에 전념한다! Nothing is sacred, and everyone is committed to rum, plunder and women!'라고, 암살단을 대표하는 문장인 '아무것도 진실이 아니며, 모든 것은 허용된다 Nothing is true, everything is permitted.'를 조롱하는 문장을 홍보 문구로 사용한다.
이를 통해, 암살단이 말하는 '모든 사람들'은 (백인)남성들만을 말하며, 그들이 말하는 자유 의지 또한 백인 남성 판타지를 채우는 구실일 뿐이라고, 이미지 메이킹을 시도한다는 게 블플의 컨셉이다.
그러면서 블플과 로그에 걸쳐 엡스테르고 내부에서는 여성 소비자들을 위해 아블린의 이야기를 이어가야 한다는 내용을 주고받는다. 암살단보다 '모두를 위한다'는 타이틀을 선점하겠다는 거다.
여기엔 뒷얘기가 있다.
이 시기에 몬트리올과 소피아는 아블린 시리즈를 이어가려고 했다. 리버레이션 엔딩은 아블린이 이수 시대의 인간들이 혁명의 리더로 이브를 언급하는 홀로그램을 보는 것으로 끝난다. 이때 이런 대사가 나온다.
A: Eve will lead us through the war of generations.
세대 간 전쟁에서 이브가 우리를 이끌 겁니다.
B: There will be great sacrifice, great sorrow, to end enslavement of the human race.
인류의 노예화를 종식시키기 위해선 크나큰 희생과, 슬픔이 있을 겁니다.
A: Now is the time to claim our freedom. Are you with us?
이제 우리의 자유를 주장할 때입니다. 우리와 함께 하겠습니까?
B: I am.
그래요.
A: Eve will lead us.
이브가 우리를 이끌 겁니다.
B: Eve will lead us.
이브가 우리를 이끌 겁니다.
여기서 A가 여성 음성, B가 남성 음성으로 나온다.
이제부터 우리 여성 주연으로 가겠다고 밑밥을 깔아 뒀다.
근데 알다시피 안 됐다.
최근에 맥데빗이 이때 당시 이야기를 구체적으로 풀어줬는데, 원래 블플은 3편의 dlc로 나올 예정이었다고 한다. 3편 작가인 코리 메이가 와서는 3에 항해 시스템이 처음 도입됐는데 꽤 잘 나와서 이걸로 dlc를 만들려고 한다, 대충 계산해 보니까 코너 할아버지 정도 시대에 맞추면 될 거 같다고 요청을 해서, 처음엔 dlc용으로 스크립트를 작업하고 있었다고.
그러다 디렉터 중 한 명이 작업하는 걸 보더니, 해적 누가 싫어하냐며, 이건 메인으로 내야 된다고 말을 꺼냈다. 얼마 후 그 디렉터의 추진으로 계획에 없던 블플이 갑자기 메인 라인으로 들어온다. 더 환장하는 게 이 디렉터란 사람이 이래놓고 회사를 나갔다.
이 시리즈에서 블플 현대 파트만큼 여성에 대해 직설적이게 말하는 타이틀이 없다. 중년남성 클리셰 그대로 성별반전한 실험체 0부터 해서 여성의 성욕을 인정해야 한다는 내용까지 나온다. 그 당시엔 당연한 게 아니었다.
과거 파트도 메리가 멘토 역할이다. 앤과 메리의 의자매 관계도 나온다. 시대의 한계는 있지만, 임신 상태를 무기로 써먹는 장면이 나오고, 모성애를 강조하지 않는다. 기기 한정이지만 아블린 dlc를 냈다, 켄웨이 사가에.
보통 블플 엔딩 장면을 가장 감동적인 장면으로 꼽는데, 이것도 약간의 반전이 있다.
에드워드는 유일하게 엔드 크레딧에 대사가 나오는 주인공이다. 여기서 캐롤라인은 필요 없다는데도 자신이 어거지로 선택했던 거면서, 우리를 위해서 어쩔 수 없었다는 식으로 책임을 회피한다. 이때 캐롤라인뿐 아니라 제니퍼를 위해서 이기도 했다고 뻔뻔하게 말한다, 엔딩 전까지 제니퍼 존재도 몰랐으면서. 이때 대화 내용이 아주 가관이다.
엔딩에선 제니퍼가 아직 어리다 보니 아버지와 모험에 대한 동경을 가지고 있어서 에드워드를 마냥 따랐는데, 에필로그에 와서 이제 아버지가 어머니에게 무슨 짓을 한 건지 알 정도로 나이를 먹자, 캐롤라인의 성을 쓰고 켄웨이라는 성을 쓰길 거부한다.
사실은 과거와 현대가 분리된 게 아니라, 몬트리올-소피아 제작진이 블플 과거 파트-현대 파트에 로그 현대 파트까지 통으로 연계해서, 우리 시리즈가 실제 현실에서 이렇게 적용된다, 이러다가 우리 시리즈 그냥 전형적인 백인 남성 판타지물에 머물게 된다, 암살단의 표어가 우스워지지 않으려면 아블린 시리즈로 계속 가야 한다, 어필을 한 거다.
제작진들은 현대 파트를 사수할 수밖에 없었다.
유저인 우리들은 암살단에 의해 원본 역사를 보고 진실을 알 수 있는 기회를 얻은 상태다. 선택권이 주어졌을 때 진실을 추구할 것인지, 지나칠 것인지는 오롯이 개인의 선택이다.
유니티 현대 파트는 외부 협력 관계인 이니시에이츠 소속인 유저에게 가장 중립적인 샘플을 보여주고, 암살단 내부 인력으로 협력할지 말지 선택권을 주는 컨셉이다.
그래서 암살단의 목적이 공존이라는 것과, 암살단이 어떤 방식으로 운영되는 지와, '무엇이든 허용된다'가 무한한 자유를 말하는 게 아니라는 것과, 암살단이 내재한 위험성, 취약점을 모두 보여줄 수 있는 아르노의 사례를 채택했다.
키 포인트는 템플러는 자신에게 불리한 과거를 은폐하고 반대세력의 유리한 점을 정보 조작하여 자신의 것처럼 포장하였지만, 암살단은 자신들의 치부까지도 진실을 있는 그대로 보여주고 선택권을 준다는 점이다.
만약 조작되지 않은 진실을 알게 된다면 템플러에서는 목숨을 바쳐야 한다. 유니티에서 아르노는 그냥 제명당하고 말았는데, 엘리즈는 제거당할 위기에 빠졌었다.
로그가 헷갈리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템플러들은 의견이 전부 일치하지만 암살단은 말이 갈린다.
이로 인해 암살단은 모순적이고 템플러는 일관적이란 인상을 받아, 템플러가 진실하다는 생각을 하게 되는데, 이는 암살단은 다양성을 인정해 주지만 템플러는 의견이 일치하지 않는 개체를 전부 제거하여 강제로 생각을 통일하기 때문이다. -리버레이션, 로그 현대 파트 엔딩 참고
템플러들의 말은 한결같지만 암살단은 말이 바뀌는 것 또한 마찬가지다. 암살단은 이견을 수용하지만 템플러는 자신들이 절대적 옳음이라 이견을 받아들이지 않는다. 템플러는 광신을 기본 골자로 한다. 광신이라는 게 무조건 극성맞게 믿는 게 아니다.
로그가 정확히 파크라이 4,5와 구성이 같다. 파크라이 4, 5가 각각 독재자, 사이비 교주에게 설득당하도록 설계되어 있는 것과 마찬가지로, 로그도 기본적으로 템플러의 정치질에 조종(manipulating)당하도록 설계되어 있다. 여기에 더해 암살단의 취약한 부분을 알려주고, 중심을 잃게 되면 이를 상대측이 어떻게 자신들의 이득으로 치환하는지도 함께 보여준다. 사회가 자동적으로 균형을 좇는다 했듯이, 자유가 극단으로 가면 질서가 설득력을 얻는다.
로그에서 셰이는 '운도 내가 만들어 I make my own luck.'라는 대사를 반복적으로 한다.
팬덤 내에서 밈으로 굳어진 정도인데, 실제 셰이가 온전한 자유 의지로 정한 것은 없다는 것을 강조하는 반어적 장치다.
셰이는 자기중심이 강하지 않은 평범한 사람들을 대표한다. 바이올렛이 별 거 아닌 사람이라고도 직설적으로 말한다. 정신적인 측면에서 에지오와 같다 보면 된다.
The people chose nothing. It was done by a group of privileged cowards seeking only to enrich themselves.
사람들은 아무것도 선택하지 않아. 그런 건 자기 배 불리기에만 혈안이 된 특권층 겁쟁이들이 하는 거다.
They convened in private and made a decision that would benefit THEM.
남들 모르게 모여서는 자신들의 이득만을 고려하며 결정을 내리지.
Oh, they might have dressed it up with pretty words, but that does not make it true.
아, 좋은 말들로 치장하시겠지, 그렇다고 그게 사실이 되는 건 아니다.
The only difference, Connor - the ONLY difference between myself and those you aid - is that I do not feign affection.
유일한 차이점은 말이다, 코너 - 네가 돕는 그치들과 나의 오로지 유일한 차이점은 - 난 위선 떨지 않는다는 거다.
-어쌔신 크리드 3, 헤이덤과 코너의 대화 중
통제된 환경 안에서 한정적이고 유도된 선택을 하면서 자신의 삶을 주체적으로 살고 있다는 착각, 통제받고 있으면서 자유롭다는 착각을 심는 것, 이게 템플러의 방식이고, 에덴의 원리다. 그리고 우리 주변에 이미 흔하게 있다.
로그 대화를 보면 헤이덤이 다각도로 볼 수 있는 일도 특정한 각도에서만 생각하도록 셰이를 지속적으로 조종한다.
로그 현대 파트는 오초버그가 이러한 셰이의 사례를 분석해서, 암살자들을 템플러로 전향시켜 군대를 조직하는 프로젝트에 참고하겠다는 컨셉이다. 유물 찾을 목적으로만 애니머스를 사용하는 건 아니다.
로그의 데번포트 암살단이 정확히 1편의 마시아프 암살단과 같은 상태다. 그런데 알타이어는 암살자로 남고, 셰이는 템플러가 된다.
셰이는 알타이어와 달리 본질이 아닌 현상에 집중했고, 쉬이 일반화했다.
그래서 암살단이 목적 아래 다시 제기능을 하게 만드는 게 아니라, 암살단의 대척점에서 현상을 지적하는 템플러가 옳다는 판단을 한다.
여기에 포세이큰(책)을 곁들이면, 가해자-피해자 입장의 연쇄반응 또한 보인다. 포세이큰은 3편 책이긴 한데, 로그용 책이기도 하다.
셰이가 걷고 있는 길이, 바로 헤이덤이 경험한 길이다.
템플러가 선역인가 헷갈리게 만드는데 큰 역할을 하는 게 헤이덤이다. 그도 그럴게, 말하는 걸 들어보면 헤이덤의 사상이 암살단에 더 가깝다.
에드워드가 사망한 후 레지널드 버치가 헤이덤을 슬하에 두고 조종해 템플러로 만들었다는 건 다 알 거다. 여기에서 봐야 할 포인트가 하나 있다.
에드워드는 블플 이후에 재력가와 혼인을 하고, 둘 사이에 헤이덤이 태어난다. 근데 자신이 부러워하고 또 저항했던 권력층의 위치에 자신이 앉게 되고, 암살자로서 자유를 위한다는 자부심에 취하게 되면서 에드워드는 변질한다. 제니퍼와 헤이덤을 성차별하고, 제니퍼를 자신의 업적을 위한 도구로 사용하며, 헤이덤을 자신과 같은 암살자로 만들기 위해 철저히 통제한다.
에드워드는 헤이덤을 암살자로 만들기 위해 검술 수업을 시켰다. 헤이덤 나이대의 아이들이 할 법한 것이 아니다 보니, 신변이 발각될 걸 우려해 에드워드는 헤이덤에게 검술 수업에 대한 것을 입막음한다. 헤이덤은 친구도 제대로 사귈 수 없었다. 생일 선물은 암살자 훈련에 쓸 무기다. 에드워드와 헤이덤의 관계는 아버지와 아들보단 암살자 멘토-멘티 관계와 같았다. 에드워드가 헤이덤을 어렵게 대하진 않았지만, 헤이덤은 sir이란 단어를 쓰며 에드워드를 우상으로 따랐다. 그리고 제니퍼는 남성 후계자(male heir라고 직설적으로 나옴)가 아니었기 때문에 열외 되고 차별당했다.
무엇보다도, 이 과정에서 에드워드가 헤이덤에게 암살단에 대한 설명은 물론, 자신이 해적 출신이라는 사실조차 알려주지 않는다.
알타이어가 자신의 흑역사까지 포함해 자식들에게 전부 알려준 거나, 지오반니가 에지오에게 아무것도 가르쳐주지 않되 아무런 통제도 하지 않은 것과는 대조적이다.
자유를 명목으로 제니퍼와 헤이덤을 통제하고 자신의 이득을 취했던 에드워드가, 로그의 데번포트 암살단처럼 헤이덤을 조종하는 레지널드 버치의 말에 설득력을 실어 주었다. -에드워드가 원인인 건 아님
역시나 셰이도 암살단과 템플러에 대해 이해하지 못했기 때문에, 레벨에서 에지오가 그랬듯, 암살단을 박멸하는데만 집착할 뿐이었고, 결국 공존을 이룰 기회였던 찰스 도리안마저 암살한다.
세상은 소수의 리더와 다수의 추종자로 구성되어 있다 했다. 셰이는 그중 절대다수의 추종자 그룹인 우리를 대표한다.
보다시피 우리는 자유 의지의 조건에 환경을 완벽히 배제할 수 없다. 그렇다면 자유 의지란 허상이라 명명해야 하겠다.
어차피 모든 선택지를 채워줄 순 없어서 자유 의지는 실현할 수 없는데, 선택지를 하나 둘 늘리는 게 의미가 있는 걸까.
모든 사람들의 개념은 1편-블러드라인에도 나온다.
1편 오프닝에서 야단맞고 강등된 다음, 알타이어가 처음 받은 임무는 변절자 색출이다.
이 변절자는 마순이란 사람으로, 변절자인 건 오히려 알 무알림이고, 그가 모두가 평등한 새로운 세상을 (템플러들이)이루려는 것을 막을 셈이라며 사람들에게 함께하자 알린다.
템플러야 둘째치고 알 무알림에 대한건 솔직히 맞는 말 한 건데, 알 무알림이 차별주의자였기 때문에 이걸 받아들이지 않고 마순을 제거한다.
마리아가 암살단의 목적과 뜻이 같았음에도 템플러에 들어간 것도 같은 이유다. 암살단이 당시 외국인과 여성을 암살자로 받아주지 않았다.
1편을 해보면 보이는 암살자들이 전부 남성이다. 근데 암살단에 여성이 있는 곳이 하나 있다.
처음 애니머스에 들어가면 알타이어가 무희 같은 옷을 입은 여성들에게 둘러싸여 알 무알림의 연설을 듣는 장면이 나온다. 이때 돌아다니면 여성들이 계속 따라붙는다. 이 장소는 마시아프의 뒤뜰에 있는 정원이다.
마지막 보스전 장소이기도 한데, 이 정원의 이름이 바로 낙원(paradise)이다.
'The promise of paradise'
알타이어가 강등 상태인 튜토리얼엔 낙원의 문이 닫혀있다. 근데 튜토리얼이 끝나고 첫 타겟을 암살한 후 암살자로서의 계급을 회복하면, 이 문이 열려서 들어가 볼 수 있게 된다. 물론 여성 npc도 있다. 즉, 마시아프 암살단은 암살자로 계급이 올라가면 보상처럼 여성을 취할 수 있었다. 그리고 암살자의 어원을 보면 암살의 스트레스를 견디기 위해 약도 했다.
결국 아 다르고 어 다른 거다.
알 무알림은 약과 여성을 제공하는 빌미로 암살자를 꾀어낸 건 아니지만, 암살단에 헌신하면 그들을 취할 수 있다는 걸 넌지시 각인시켰다.
당연히 마리아는 자신의 능력만을 봐주는 로베르의 동료로 들어간다. 근데 로베르만 특별히 그랬던 거라 로베르가 죽고 나서는 템플러에서도 내쳐진 거고. 블러드라인 초반에 아르망 부샤르가 원래 템플러는 여성을 금하는데 로베르가 의지박약이라 여성에게 넘어가 금기를 깼다고, 로베르와 마리아 둘 사이에 뭐가 있어서 옆에 뒀다는 식으로 말하자, 마리아가 모욕감을 느끼는 장면도 나온다. 물론 마리아는 뼛속까지 대의를 따르는 사람이라, 이후에도 개의치 않고 단독으로 행동한다.
알 무알림이 암살되고도 마리아는 당연히 알타이어를 적대적으로 대할 수밖에 없었다, 알 무알림 죽어봤자 가장 충신이었던 사람이 이어받으면 뭐가 달라지겠어. 실제 알 무알림 체제에 익숙하던 암살자들이 이 체제를 유지하려 했다. 이들이 아까 말한 근본파 압바스 무리다. 이들은 외국인이자 여성인 마리아가 암살단에 들어오는 걸 마뜩잖아했다.
어쨌든 달갑잖았어도, 이제 알타이어가 대화를 계속 시도하고 같이 협력하려고 노력하니까, 마리아도 알타이어가 암살단을 바꿀 사람이라는 걸 인정하고, 둘은 친구가 된다.
블러드라인에서 마리아와 알타이어는 담백하게 적으로 투닥거리다 친구가 되면서 끝난다. 데이터베이스에서도 블러드라인 이후에 여행하다가 연애감정 생긴 거라고 적혀있다.
알타이어가 마리아를 처음 보고 여성이라는 거에 깜짝 놀라는 장면도 스토리에 유효한 장면이다. 그때 알타이어가 이 흐름에 여성이 포함되어 있을 수도 있다는 걸 생각지도 못했다는 게 중요하다. 알타이어는 미소지니였다. 블러드라인 시작 부분에 마리아를 두고 로베르의 여자(그것도 girl)란 골 빈 표현도 쓴다. -당연히 마리아는 참지 않는다.
마리아는 알타이어가 여성인권에 대해 생각하는 계기가 된다. 아마도 마리아가 템플러에 내쳐지는 상황을 보고서 깨달은 것 같다. 마리아가 생각보다 비중 있게 나온다.
어차피 모든 선택지를 줄 수 없는데도, 마리아에게 암살단의 문을 열어준 것은 의미가 없는 걸까.
다양성은 외형적인 부분만이 아닌 사고의 다양성도 포함한다.
열 개의 암살단 지부가 있다면 열 가지 운영 방식이 있다.
백 명의 암살자가 있다면 백 가지 암살 루트가 존재한다.
사고의 다양성은 유사시 문제 해결 방식의 다양성을 내포한다.
문제 해결 방식이란 암살자들의 대처 방식이며, 게임에서 이는 곧 플레이 스타일을 말한다.
가능한 한 다양한 플레이 스타일을 포용할 수 있어야, 시리즈에서 주장하는 바를 뒷받침해 줄 수 있다.
그리고 그러한 방향으로 발전하고 있다.
rpg라는 단어 때문에 큰 변화를 겪은 것처럼 느껴질 텐데, 사실 바뀐 건 장비 시스템과 전투 시스템뿐이고, 암살을 없앤 게 아니라 전투만으로도 엔딩을 볼 수 있게 해 준 거다.
왜 전투만으로 엔딩을 볼 수 있게 해 줬는가 하면, 고대 시리즈에 들어 암살 시스템이 강화되었다.
하도 구작이 잠입-암살로만 돌아가는 것처럼 말이 퍼져서 오해가 깊던데, 잠입-암살만으로 엔딩을 볼 수 있는 어쌔신 크리드 타이틀은 없다.
잠입에 몰아준 크로니클즈 시리즈마저도 강제 전투가 있다. 전투 또한 암살자의 소양이라, 어크 시스템 중 하나에 포함되기 때문이다. 항상 암살/전투/파쿠르 컨텐츠의 비율이 비슷하게 나온다.
구작이랑 고대 시리즈의 암살:전투 비율도 거의 비슷하다. 고대 시리즈가 부가 컨텐츠의 수가 압도적으로 많다 보니, 같은 암살 플레이를 하면 오히려 구작보다 암살 비율이 높게 나온다. 발할라가 메인타이틀 기준 암살 컨텐츠 절대량도 가장 많은 데다, 암살 없는 순수 잠입 플레이가 가능한 컨텐츠 비율도 가장 높다.
그럼 왜 구작이 잠입 암살 비율이 월등히 높은 것처럼 느껴지느냐, 떠먹여 줘서 그렇다.
잠입-암살(편의상 암살이라고 함)과 전투는 플레이 스타일이다. 성향 차이지, 시스템 차이나 난이도 차이가 아니다.
성격상 전투를 진짜 못하겠는 사람도 있고, 암살을 도저히 못하겠는 사람도 있다.
보통 전투는 준비 과정이 간단하고, 플레이 시간이 짧게 걸리는 대신 위험도가 높다, 그리고 이 스릴에서 오는 재미가 크다. 암살은 준비 과정이 복잡하고 플레이 시간이 매우 긴 대신 안정적이고 위험도가 낮다, 그리고 폭발적인 재미는 없어도 깔끔하게 진행됐을 때 오는 만족감이 있다. 간단하게 전투는 하이 리스크-하이 리턴, 암살은 로우 리스크-로우 리턴이다.
긴 준비 과정을 대부분 지루해하고, 쾌감이 부족하다는 측면 때문에, 암살이 비주류 플레이 스타일이다.
근데 어크 구작 해보면 알겠지만, 암살이 빠르고 쉽기까지 하다. 그래서 사람들이 암살 플레이를 많이 했다.
이를 가능하게 한 시스템이 선형 메모리 시퀀스, 완전 동기화 그리고 미니맵이다.
메모리 시퀀스를 통해 지시문만 따라가다 딱 암살만 하면 되게 판 다 깔아주고, 완전 동기화로 어떤 방법으로 암살할지까지 안내해 준다.(예: 공중 암살로 처치하시오)
단연 핵심은 미니맵이다. 지형, 표적 위치, 표적까지 경로, 진입로-퇴로, 적 동선+시야각, 이런 정보를 파악하는 것도 암살 플레이에 포함되는 거라 원래는 유저가 해야 하는 건데, 구작 어크는 이걸 게임에서 알아서 다 해준다. 암살 수행은 그저 잠깐이고 이 정보 수집 부분이 플레이 시간의 대부분을 차지할 정도로 메인인데, 이걸 내가 할 수 없다. 미니맵을 끌 수 있으면 좀 낫긴 하다만, 미니맵을 끄면 미니맵에서 얻는 정보들을 얻을 수 있는 수단이 직접 몸으로 부딪히는 거밖에 없어서 제대로 못 한다.
제작진도 인지하고 있었는지, 고대 시리즈에서는 암살 난이도를 높여서 전투와 밸런스를 맞췄다. 오리진부터는 표적에 대한 정보 수집부터 암살까지 과정 대부분을 유저 재량으로 할 수 있다. -오리진 전에 유니티에서도 한 번 난이도를 올렸었음
난이도 하락에 가장 크게 기여하고 있던 미니맵을 삭제하고, 미니맵에서 자동으로 얻었던 정보들을 수동으로 얻을 수 있는 시스템을 넣었다.
그게 이 친구들이다.
플레이 시간 늘리기 뭐 이렇게 알려져 있던데, 암살 플레이 하라고 준 잠입 파트너들이다. 단순 표적만 찍는 게 아니라 마킹 작업 하면서 조감도도 같이 보고 구조물이랑 경로 파악하라고.
오리진에서 세누 꼬박꼬박 쓰게 해서 암살 플레이에서 드론 활용하는 방법 익히게 하고, 오디세이에서는 자유롭게 쓸 수 있게 했다.
근데 여기에 또 문제가 있다. 세누와 이카로스 이 친구들이 너무 유능하다.
인식이 너무 빠르고 정확하다 보니, 드론을 띄워도 유저가 별로 할 게 없다. 아마 이 때문에 플레이 시간 늘리기용으로 알려져 있는 거 같다. 그냥 번거로운 과정이 됐다.
그래서 발할라에선 드론의 인식 기능을 대폭 하향했다. 표적을 바로 짚어주는 게 아니라 범위를 보여주는 방식으로 바뀌었다.
발할라가 마킹이 오라형태로 바뀌어서 잘 티가 안 나는데, 쉬닌으로도 마킹이 된다. 대신 거리가 멀면 유지되지 않는다. 딱 정찰할 때 식별만 하는 용도다.
그리고 표적을 강조했던 구작들과 달리 강조되지 않는다. 표적추적 끄면 타겟 정보창의 문서와 인상착의 참고해서 직접 육안으로 찾아야 한다. 거기다 마킹이 아예 불가능한 적들도 있다.
이런 개선으로, 발할라에선 적의 상태를 파악하기 위해 주기적으로 시야각을 돌려주거나 쉬닌을 띄워야 한다. 유저 참여도가 크게 올라갔다.
파크라이 5와 뉴 던도 원래 있던 미니맵을 삭제했다.
공중 드론이 아닌 지상 드론을 줘서 스코프로 컨트롤할 수 있게 했다. 미발각 상태에선 부머나 팀버가 적진에 들어가도 공격받지 않기 때문에(팀버의 경우 개한테는 발각됐던 걸로 기억함), 스코프로 부머와 팀버를 이리저리 뛰어다니게 해서 적들을 마킹하고, 동선이나 구조물을 파악하면 된다. 6에서 미니맵이 돌아오긴 했지만 마킹 전에는 범위로 표시되기 때문에, 마킹 작업 귀찮다 하면 붐붐(=부머) 데리고 다니면서 똑같이 하면 된다.
고대 시리즈의 암살은 못 하는 게 아니라 안 하는 거다. 타이틀별 특수 암살(로프 암살 등)을 제외한 공용 암살 플레이는 전부 그대로 다 할 수 있다. 게임에서 암살하라 따로 지시해주지 않을 뿐이다.
레벨로 막아놨다고 하는데, 이것도 구작 방식대로 플레이하면 자동적으로 암살이 가능한 레벨에 맞춰지도록 해놨다. -오디세이는 초반 부분 암살 일부 막아놓은 거 맞음
오리진이 1편 암살 시스템 그대로 오픈 월드로 만든 타이틀이다.
1편 시스템 특징이 지역을 돌아다니며 근황이나 표적에 대한 정보를 얻는 보조 미션을 일정 수 이상 하면, 계획을 세울 정도로 정보가 모였기 때문에 암살을 수행할 준비가 되어 암살 이벤트가 열린다는 건데, 이걸 그대로 캐릭터 레벨 시스템으로 옮겼다.
1편 시스템을 선형으로 만든 게 근본으로 많이 알려져 있는 그 형식이고, 1편 시스템을 극적인 부분을 가미해 개선한 게 유니티의 특별 처치다. 뼈대는 1편 시스템 컨셉을 그대로 계속 쓰고 있다. 정보 수집> 암살이 근본 틀이다. 그래서 정석 암살 플레이를 하면 레벨이 맞춰짐=암살 이벤트가 열림이라 암살을 똑같이 할 수 있다. 표적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는 상태로 닥돌 하면 암살을 못하는 게 당연하다. 암살하고 싶으면 컨셉에 맞춰라 이거다.
그래서 오리진의 보조 미션은 대부분 표적이 살아있는 시점으로 고정되어 있다.
고대 시리즈도 메모리 시퀀스 시스템을 그대로 유지한다. 각 미션이 메모리 시퀀스다.
다 설명하자면 애니머스 시스템 컨셉부터 시작해야 돼서 너무 길고, 간단하게 초반에 노드-코드 개념 얘기 했었다.
메인 미션은 노드고, 보조 미션은 코드다. 과거 파트는 기억이라 이미 일어난 일이기 때문에, 노드를 바꿀 수 없다. 그래서 서막에서 유저가 어떻게 하든 발드르를 살릴 수 없다.
우리는 노드를 보려고 하는 거라, 애니머스에서 자체적으로 노드에 영향이 안 가는 덜 중요한 기억을 보조 미션이나 직접 조작 가능한 부분으로 분류한다. 그래서 보조 미션은 해도 되고 안 해도 되고, 언제 해도 상관이 없다. 결과가 달라져도 될 때도 있다. 그래도 전부 기억인 건 똑같기 때문에, 시간 순서는 있다.
마찬가지로 기억이기 때문에 미션 중에 보는 대화도 고정된다. 그래서 대사와 유저의 행동이 어긋나는 모습을 보일 때가 있다.
예로, 오리진에서 아야와 경주를 할 때 유저가 이기고 있어도 아야가 이기고 있는 걸로 대화가 나온다. 실제 기억에선 아야가 이겼기 때문이다. 발할라에서도 영국에 가기 전에 시비가 걸리는데, 싸움을 피해도 나중 대화에서 시비 건 병사를 죽인 거로 나온다. 실제 역사에서는 에이보르가 싸웠기 때문이다. 고대 시리즈에선 이러한 디테일을 맞추는 게 완전 동기화다.
구작에선 메모리 시퀀스 간 시간 간격을 끊어서 보여줬지만, 오픈월드가 되고는 바로바로 이어서 할 수 있게 됐다. 그래서 연속적으로 일어난 일이라고 착각할 수 있는데, 미션 사이에 시간 간격이 있다. 오랜만에 만난다는 뉘앙스의 대사나, 캐릭터의 머리카락이 자란 걸 보여주는 식으로 알려준다. 발할라가 6~7년 분량의 기억이다.
눈치챘겠지만, 플레이 방식 자체가 코드다. 이미 확정된 노드엔 영향이 안 간다. 그러니까 마음대로 해도 된다. 구작에서 들키면 실패하는 미션이 있거나 완전 동기화를 신경 써야 했던 건, 애니머스가 구형이라 안정성을 신경 써야 해서다.
! 오디세이는 노드-코드 개념을 따르지 않으므로 해당 안 됨
오리진은 구작의 암살 시퀀스처럼 암살하기 좋게 배치해 놓은 세트장이 아닌 오픈월드라, 표적이 각각 일정이 있다. 그래서 몇몇 표적을 제외하곤 언제, 표적이 어떤 활동을 하고 있을 때, 어디서, 어떤 방식으로, 어디로 진입해서 어떤 경로로 표적에 도달하고 암살 후엔 어떻게 빠져나올 건지 등 유저가 마음대로 할 수 있다. 여기에 기존 근접 암살뿐 아니라 저격까지 할 수 있게 됐다.
오디세이는 이 베이스에 암살 컨텐츠 수(결사단 암살)를 늘려주면서 스킬, 스탯, 장비+각인으로 암살 세팅을 추가로 할 수 있게 해 줬고, 발할라는 또 오디세이 베이스로 암살용 스킬이랑 순수 잠입 컨텐츠를 늘려주고, 활용할 수 있는 구조물을 추가해 주고, 메인 미션 암살만 선형 시퀀스로 바꾸고, 한방 암살 옵션 넣어서 레벨 제한도 없애줬다.
사실상 난이도에 자유도까지 올려주면서 암살 시스템 강화한 건데, 비주류 속성을 강화했으니 안 할 수 있는 선택지도 같이 준 거다. 여기서 본인이 안 한다는 선택지(전투)를 선택한 거고.
시리즈 제목이 암살자의 신조다 보니, 암살자라는 단어 때문에 암살 플레이를 해야 한다는 부담감이 있나 보다.
컨셉을 따르려면 암살 플레이를 하는 편이 좋긴 하다만, 진짜 암살자처럼 하려면 플레이 시간 10배 된다.
그리고 일단 암살이라는 개념부터 잘못 알려져 있다.
우리한테 암살은 몰래 죽이는 것이다. 근데 영어권은 좀 다르다.
OED 기준, To murder (a person, esp. prominent or famous person) in a planned attack, esp. with a political or ideological motive. Also: to murder (a person) on behalf of another, esp. as a hired or professional killer.이고,
Oxford Languages 기준, murder (an important person) in a surprise attack for political or religious reasons.이다
공통적으로 정치적인 목적으로 유명 인사를 살해한다는 뜻이 있다.
유비 오리지널 시리즈에서 말하는 암살은 이 암살이다. 암살단이 정치적인 단체라는 건 이미 얘기했다.
어크의 암살자는 이 목적으로써의 암살을 따르고, 수단으로써의 암살을 '선호'한다. 잠입을 하거나 암살검을 이용하는 것은 목적을 이루기 위해 사용하는 여러 수단 중 하나다. 몬트리올에서 이거 꽤 답답했는지, 파크라이 6에 게릴라를 어쌔신으로도 부르도록 해놨더라.
1편에는 메모리 코리도어 기준 11명의 타겟이 있는데, 이중 우리가 생각하는 잠입-암살 방식으로 암살할 수 있는 표적은 절반인 6명이다. 나머지는 강제 발각되거나 전투로 암살한다. 실제 만전을 기하기 위해 암살자에겐 전투가 필수 요건이었다.
로베르 암살 때는 군대를 거의 학살하면서 뚫고 간 다음, 설득에 실패하자 콜로세움 열어서 전투로 암살한다.
1편 템플러 버전 트레일러를 보면 알타이어 설명하면서 전투 능력이 뛰어나단 내용도 포함되어 있다. 마시아프 갈 때마다 항상 앞마당에서 암살자들이 훈련하고 있다.
처음부터 우리가 아는 그런 이미지의 암살자가 아니었다.
설정 다 종합해 봤을 때, 정석적인 어크식 암살은 지정 표적만 암살해야 한다. 템플러 복장이면 죽여도 되고 이런 게 아니라, 게임 진행상 반드시 암살해야 하는 인원 외엔 전부 살리면서 플레이해야 한다.
1편 트레일러가 딱 정석적인 어크식 암살이다. 그냥 보면 사망자가 네 명으로 보이는데, 자세히 집중해서 보면 사망자는 표적 한 명뿐이다. 나머지 세 명 전부 살아있다.
암살 사정거리까지 잠입> 표적만 암살> 도주+은신, 이게 정석이다. 세부적인 건 마음대로 해도 된다. 사정거리는 확정 암살이 가능한 범위라 무기에 따라 달라지고, 표적만 암살하는 거면 방법도 상관 없다. 대신 컨셉상 암살검이 가장 날카로운 무기+초근접+급소 공격(알테어 연대기 참고)이라 무조건 죽는 거라서, 암살검만 즉사가 인정될 때도 있다. 암살 후에 남은 인력과 대치하면 추가 사상자가 발생할 수 있으니, 바로 도주한다.
발할라 이전 타이틀들의 구역활동 조건을 보면 암살 표적이 있다. 그들만 암살하면서 나머지 조건 채우고 빠져나와야 한다. 표적이 없으면 사람 건드리지 말고 조건만 달성하고 나온다. 발할라는 아무 지정도 안 해주기 때문에, 순수 잠입으로 아이템만 먹고 나오는 게 정석이다. 크로니클즈도 순수 잠입이 가장 점수가 높다.
개인적으로 '목격자가 없으면 암살이다' 밈 좋아하는데, 내용면에선 목격자는 있어야 할 때도 있고 없어야 할 때도 있고 상황에 따라 다르다. 극단적인 방법을 쓰는 걸 사회가 암묵적으로 동의해 줄 정도의 상황이 아니라면, 여로모로 될 수 있는 한 목격자를 만들지 않는 게 좋다고 나온다.
플레이로 따져보면, 발각되면 실패하는 미션이 아닌 이상, 발각 안되고 다 죽이는 거보다 발각되고 안 죽이는 게 낫다.
발각되면 절대 안되는 거 아니다. 1편은 애초에 암살 후 무조건 강제 발각되고, 암살 전에 강제 발각되는 경우도 있다. 유니티 같은 경우엔 튜토리얼에서 고의로 발각된 다음 따돌리는 플레이도 권장한다. 들키면 칼 뽑아 들지 말고 최대한 따돌리는 게 좋다. 불살 플레이가 생각보다 재밌다.
컨셉놀이 하려면 이렇게 해야 된다는 거지, 지켜야 한다는 건 아니다. 그냥 암살을 해야 한다거나 들키는 거에 부담감 갖고 플레이할 필요 없다는 의미에서 얘기했다.
이 글을 처음부터 여기까지 쭉 다 읽었으면 알았을 거다. 근본 아니라고 곡소리하는 부분들 근본에 다 있다.
어크 시리즈를 어떻게 즐기든, 어떻게 평가하든 자유다. 당연히 이 시리즈를 희대의 명작이라 생각하고 그러진 않는다. 구작 더 좋아해서 그것만 계속 하고 싶을 수도 있고, 과거 파트 더 좋아해서 그것만 나왔으면 할 수도 있다. 하지만 그에 대한 근거로 근본을 내세우는 건 날조다.
원래 블로그를 슈퍼 라이트하게 운영하는 게 목적이라 무거운 이야기 안 쓰고 싶기도 하고, 직접 알아채지 않으면 의미가 없다고 생각해서 어크 이야기는 안 하려고 했는데, 글을 쓰게 된 이유는 크게 두 가지가 있다.
일단, 글 도입부에 밈화 탈피제라는 표현을 썼다. 밈화란 결국 선입견이다. 세상엔 좋은 선입견도 있을 수 있고, 나쁜 선입견도 있을 수 있다. 인간은 완벽히 객관적일 수 없기 때문에, 이를 완전히 없애는 건 불가능하다. 그래서 나쁜 선입견이라 해도 적당히 있으면 그러려니 하는데, 어크는 누가 봐도 적당히가 아니다. 그냥 그 선입견을 깨고 싶었다.
다른 이유는, 시리즈의 방향성이 살짝 바뀌었다는 것이다.
어크가 비유를 많이 쓰는 문학이나 영화와 같은 방식으로 내용을 전달하는데, 빠른 호흡에 대사 위주로 직설적이게 진행되는 것에 더 익숙한 게임 유저들에게 잘 맞는 방식이 아니다. 그래서 전달률이 기본적으로 낮을 수밖에 없다.
말했듯 직접 알아채지 않으면 의미가 없다고 생각을 했고, 제작진 측에서도 별다른 움직임이 없길래, 계속 기다리려나보다 했다.
근데 발할라를 기점으로 파크라이 6까지해서 성향이 약간 바뀌었다.
이제 간접적인 방식으로 알아들을 사람들은 다 알아들은 데다, 사회의식의 변화로 이전보다 직설적으로 표현해도 될 환경이 마련된 것도 있을 거고, 간접적인 방식에 한계를 느끼기도 했을 거고, 기존 방식의 장단점을 저울질해 봤을 때 단점이 더 크다고 판단했을 수도 있고, 정확히 알 수는 없지만 이런저런 정황상 앞으로는 (어크 치고)직관적이게 나가기로 방향을 잡은 거 같다.
사실 3편 엔딩에 대한 건, 발할라 이전에 오리진에서 먼저 하나 던져주며 떠봤었다.
오리진 이수 전령 중 하나에 데스몬드 이야기가 나온다. 데스몬드가 언급되어 있어 다 퍼졌기 때문에 한 번씩은 봤을 거다. 여기서 3편 엔딩 당시 현대 파트 상황을 나열한 뒤에, 이런 내용이 이어진다.
...
We thought that would have been enough.
우린 그 정도면 충분할 거라 생각했다.
And it was until it wasn't
그렇지 않아 질 때까진 그랬다.
Time is unyielding.
시간은 완고하다.
It always corrects itself.
스스로 바로잡으려 하지.
...
Path are fluid, continous.
경로는 유동적이고, 지속적이다.
Nodes are static, changeless.
노드는 고정이고, 불변이다.
And the wave function collapses the paths into nodes which branch out.
그리고 파동 함수는 분기된 노드의 경로를 붕괴시킨다.
Again, and again, and again.
다시, 그리고 다시, 또다시.
Can you feel the wave collapsing, trying to course correct Desmond's act of defiance?
데스몬드의 불복을 바로 잡으려는 파동 붕괴가 느껴지는가?
The incoming node needs the world to end.
다가올 노드는 세상의 종말을 요한다.
이 부분은 양자역학으로 직행하는데, 아직 공부가 안 된 상태라 앞선 개념들과 엮어서 정리해 보겠다.
앞에 선악과와 노드-코드 개념이 있었다. 선악과의 원리로 동시에 다중 미확정 진실이 존재한다고 했다, 이게 파동 함수고, 인지능력에 의해 진실이 고정되는 현상이 파동 붕괴다. 노드는 여러 코드들의 교점으로 반드시 일어나는 일이랬다, 이건 파동 함수가 아닌 고정값이다. 노드는 관찰 시점 기준의 요인들이 적용된 상태로 고정되어 있다 했지. 이 고정값의 가변성에 관여하는 부분인 코드가 미확정 진실인 파동 함수다. 관찰 시점보다 과거의 코드들은 확정 진실이 누적된 상태=파동이 붕괴되었기 때문에 고정되어 변경할 수 없다. 그리고 시간은 선형이다. 그러니까 노드는 관찰 시점에서 직통으로 바꿀 수가 없다. 그걸 데스몬드가 억지로 바꿨다.
원래 인류가 태양풍을 그대로 맞는 게 3 엔딩 지점에서 자연적으로 고정된 노드인데, 데스몬드가 부자연스러운 방식으로 강제로 바꿨다는 뜻이다. 그 때문에 시간이 변이 된 노드를 바로 잡으려고 다시 종말 노드가 고정되도록 코드들을 스스로 바꾸는 중이다.
그렇게 복구된 노드가 '바심이 태양풍을 일으킨다'다. 그리고 이번에 레일라가 또 강제로 바꾸었다. 즉, 또다시 종말의 노드가 올 거다.
이수의 유물을 사용하면 실제론 종말을 막지 못하고 누군가를 희생하는 것만 끊임없이 반복된다. 부자연스러운 방법이 아닌, 노드에 관여하는 코드를 찾아내서 하나하나 바꿔 나가는 방법 이어야 한단 말이지.
결국 처음부터 해온 얘기들과 전부 이어진다. 미봉책만 반복하지 말고 본질을 개선해야 한다. 사람이 변해야 한다.
초반에 말했듯 데스몬드의 선택은 생존 이수들이 유도한 거다. 그래서 데스몬드의 선택에 대해 어? 할 수 있는 대사다. 근데도 별다른 반응이 없었다.
그래서인지 발할라에선 데스몬드가 아예 직접 등장해 자신이 어떻게 했어야 했는지 후회하는 모습을 보인다. 더해 레일라가 데스몬드와 반대로 해보면 어떨까라며 다이렉트로 꽂아준다.
그런데도 여전히 귀 막고 근본타령하는 거면, 이제 본인 선택이라 봐야 한다. 이 이상 기다려줄 필요 없이 두고 가는 게 맞는 듯
그래서 이번에 현대 파트를 따로 분리한 게 아닌가 싶다.
어크는 판타지물이 아닌 sf물이다. 과학적 지식으로 설명할 수 없는 게 마법처럼 보이는 지라 연출을 그렇게 하는 거지, 마법이나 권능 같은 신비로운 힘은 없다. 발할라 dlc1의 드루이드도 판타지 종족이 아닌 종교를 말한다. 설정이 급변하지 않는다면 헥세의 마녀도 판타지가 아닌 학자, 지식인, 이쪽으로 나올 거다.
이수가 이 sf 설정을 담당한다. 그래서 이수 파트가 사실상 엔드 컨텐츠다.
이 시리즈도 결국 사람이 만드는 거라 설정 다 착착 들어맞는 건 아니다. 말이 안 되는 이상한 부분도 분명 있다. 그런 건 제작진들도 알게 되기 때문에 보통 다음 작품에서 피드백돼서 나온다.
보면 중요한 개념들이 알타이어 개혁으로부터 나오도록 설정되어 있다. 근데 고대 시리즈는 그 이전이라 설정 맞추려면 이 개념을 소개할 수 없다. 그래서 내용을 전달하는 걸 우선으로 두고 설정을 타협한 부분들도 보인다.
사회 흐름을 반영해야 하는 시리즈 특성상 처음부터 모든 걸 계획하지 않고, 프로젝트 방향성도 잘 바뀌는 편이라, 나오기 전까진 알 수 없다.
알타이어의 결말도 nds용일 땐 회의적이었다, 메인이 되면서 희망적이게 바뀌었다. 이 때문에 알타이어 코덱스에 나오는 알타이어의 결말이 레벨의 연출과 좀 어긋난다.
개인적으로 오리진 초기 시안이 너무 아쉽다. 아야 설정 말고도 좋은 게 더 있어서, 그대로 나왔으면 1편 제치고 최고의 타이틀 됐을 텐데.
그리고 제작진들도 우리와 함께 의식이 성장하기 때문에 이전 작에서 아니다 싶은 설정은 고쳐지기도 한다.
예로, 이수의 설정은 원래 전 세계의 신들 중 역할이 같은 신을 하나의 이수로 통합한 설정이었다. 종교 항목에서 말했듯 사람들이 공통적으로 가지는 감정들이 반영되고 서로 영향도 받기 때문에, 문화권마다 공통되는 신이 생긴다. 그니까 옛날 설정으론 주피터와 오딘이 같겠지. 하지만 공통되는 부분이 있대도 각자의 문화를 반영한 부분 때문에 완벽하게 같지는 않은데, 그 문화를 하나로 퉁치는 건 아니라 생각돼서 신화 지역 단위로 이수가 나뉜다고 설정을 바꿨다고 한다.
처음부터 진보된 사상을 담고 있었다고 해도, 그 시대 한계가 분명 있다. 그래서 이왕이면 최신작을 하는 게 좋다.
올해 유비 포워드 보고 예상하건대, 파크라이 시스템이 아바타로 가고 와치 독스 시스템이 스타워즈로 간 거로 보아, 두 시리즈는 한동안 안 나올 듯싶다. 게임 시스템이 호평받아도 해당 ip 후속작으로 나오겠지. 그래서 유비 오리지널은 어크에 전부 집중한 게 아닌가 한다.
파크라이와 와치 독스 설정 좋아해서 어크 현대 파트에 흡수하는 방향으로 가면 어떨까 하는 희망사항이 있다.
그리고 솔직히, 이니시에이츠 내용 다 까먹어가지고. .) 이거도 인피니티에 그대로 이식해 줬으면 좋겠다.
최대한 모든 타이틀을 담고 싶어서 욕심내다 보니 과하게 길어졌다. 다시는 안 해야지.
작품에 어떻게 담아 놓았는 지를 설명하느라 길어지긴 했는데, 쭉 보면 알겠지만 당연한 이야기들이다. 기본적이고, 어려운 이야기들이 아니다. 어떻게 전달하는지에만 익숙해지면 된다. 어크 제작진들이 대부분 메타포광인들이라, 어렵더라도 쉽게 설명 잘해준다.
좀 만물 알타이어설 같아졌는데, 근본을 얘기하려다 보니 어쩔 수 없다, 얘가 어크.zip이라. 이제 리메이크 됐으니까 앞으로는 굳이 알타이어를 찾지 않아도 될 거다.
난 어크가 게임 시리즈로만 남기에는 아까운 ip라고 생각한다.
괜히 스타트렉에 비유한 게 아니라, 그럴 만큼의 잠재력을 가지고 있다고 본다.
그렇다고 완벽하단 말은 아니고. 이 시리즈가 잘 만들긴 했지만 어디까지나 북미-유럽 중심으로 만들어진다는 점을 잊어선 안 된다. 그리고 유비사 자체는 내러티브 쪽에 딱히 친화적이지 않다.
담고 있는 내용이 확실히 나이브하기 때문에, 자칫 백인들의 뭣 같은 무브온 감성으로 뻗어 나갈 수도 있다. 몬트리올도 이 성향이 아주 없진 않다.
다양한 유저들의 피드백을 받는다고 해도, 대상 유저들이 그럴 만큼의 여유가 있는 계층에 한정될 수밖에 없다는 것도.
트랜스 미디어든 지역 확장이든, 더 다양한 사람들에게 어필하다 보면 외부의 시각도 반영될 기회가 높아질 것이고, 이 한계도 언젠가 넘을 수 있을 거라 기대한다.
작품에서 무얼 얻어갈지 정하는 건 자기 자신이라고 생각한다.
얻어갈 내용이 많은 시리즈니까, 다들 좋은 것으로다가 얻어갔으면 좋겠다.
이건 어디까지나 개인 해석이고, 이제 어떤 방식인지 알게 되었으니, 더욱 다채로운 해석이 나올 수 있을 것이다.
! 타게임들이 내용이 없다고 읽힐 수 있는 부분이 있어 삭제함, 그 외 지나치게 공격적인 부분들도 수정, 삭제했다. 날 세우는 버릇 고쳐야겠다.
어쌔신 크리드 스크립트 출처: https://gamefaqs.gamespot.com/ps3/930022-assassins-creed/faqs/614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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